등산/무등산자락 다님길

2015년 봄 다시 가본 무등산자락 다님길

무량청정1 2015. 5. 22. 20:02

2015.05.22.한낮이 기운 늦으막한 시간에 집에서 나와 무등산자락 다님길을 다녀왔다.

 

지산동 단사공원-보덕사-쌍정자-깃대봉-쌍정자-전망데크-도계선방-학운초교-증심사지구 상가-제1수원지-삼나무숲-주차장

 

13:45 지산동 단사공원에서 버스를 내려 정류장 바로 옆에 서 있는 오지호 화백 안내판....주위를 아무리 둘러 보아도 더 이상의 표지는 없다.

또 다음 기회로 미룬다.

옛날에 광주에선 지산유원지가 유원지로서 명성을 날렸는데...지금은 케이블카9삭도)도 멈춘지 오래고....유원지로서의 명분을 잃은 지 옛날이다.

오늘은 일단 증심사 주차장 까지 가 보다. 체력이 남으면 세인봉 삼거리를 넘어 동작골로 가 보리라...

정지장군에 대한 유적지나 사료 보관된 곳은 없는지 설명이 너무 간료하다.

 

정지장군예장석묘

[ ]

요약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고려 말기의 명장 정지(:1347∼1391)의 묘.
정지장군예장석묘

정지장군예장석묘광주시 북구 망월동. 광주기념물 제2호. 고려 말기의 명장 정지의 묘로, 둘레는 19.3m, 높이는 1m이다.

지정종목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광주기념물 제2호
지정일 1975년 12월 30일
시대 고려
종류/분류
크기 둘레 19.3m, 높이 1m
소재지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산 176 지도

1975년 12월 30일 광주광역시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었다. 석조로 되어 있으며 둘레 19.3m, 높이 1m이고 묘비와 석인() 2기가 있다. 1391년(공양왕 3) 왜적을 무찌르는 데 큰 공로를 세운 정지를 예장한 뒤 묻은 묘이다. 예장이란 국가에서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내는 것으로 국장의 다음가는 국가장이다.

1644년(인조 22)에 정지의 유훈을 기리기 위해 지금의 동명동에 경렬사를 세워 향사해왔으며, 이곳에는 1719년(숙종 45년) 그의 9대손 충무공 정충신()도 함께 배향하였으며 이어 설강 유사, 송설정 고중영, 구성 전상의, 송암 유평, 고중영의 아들 구암 고경조, 시은 유성익 등을 추가하여 8현을 모셨다고 유허비에 기록되어 있다.

1871년 흥선대원군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1974년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사단법인 정지장군유적보존회가 1981년 12월 30일 정지의 묘소 옆에 새로 경렬사를 준공하였다. 현재의 사우는 모두 철골 와가()로 지어졌다. 건물은 사우(12.9평), 내삼문(4.3평), 외삼문(5.09평)과 관리실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지장군예장석묘 [鄭地將軍禮葬石墓] (두산백과)

 

정지장군 갑옷

  • 정지장군 갑옷(鄭地將軍 甲衣)
  • 정지장군 갑옷
    종 목 보물  제336호
    명 칭 정지장군 갑옷 (鄭地將軍 甲衣)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복식공예/ 의복
    수량/면적 1착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광주 북구 비엔날레로 111,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용봉동)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정씨문중
    관리자(관리단체)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정지장군 갑옷에 대한 설명입니다.

    갑옷이란 싸움터에서 적의 화살이나 창, 검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입었던 보호 장비로, 이 갑옷은 철판과 철제 고리를 엮어 만든 경번갑이다.

    정지장군 갑옷(鄭地將軍 甲衣)의 주인인 정지장군은 고려 충목왕 3년(1347)에 태어나, 왜구를 물리치는데 큰공을 세웠으며 공양왕 3년(1391)에 세상을 떠났다. 이 갑옷은 장군이 왜구를 물리칠때 직접 착용했던 것으로 후손에 의해 전해진 것이다.

    총 길이 70㎝, 가슴둘레 79㎝, 소매길이 30㎝로 세로 7.5∼8㎝, 가로 5∼8.5㎝의 철판에 구멍을 뚫어 철제 고리로 연결하였다. 앞면에는 철판 6조각을 한 줄로 연결한 것이 6줄이 있고 그 중 두 줄은 여미게 되어 있고, 뒷면은 7조각을 한 줄로 연결한 것이 5줄로 등을 가리게 하였다. 어깨와 팔은 철판없이 고리만을 사용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앞면 아래쪽에 약간의 손상이 있지만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갑옷으로 매우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빛고을 산들길에서 거져옴.

    13:49  불황사로 올라 가는길...

    13:52  지금은 나뭇잎이 우거져 장원봉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 어디에 옮겨진 향교가 있을까?

     

    장원봉

    [ , Jangwonbong ]

    『여지도』(광주)의 장원봉 일대

    『여지도』(광주)의 장원봉 일대

    구분 자연지명 > 산
    위치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광역시의 동구 지산동과 북구 석곡동 관할 청풍동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389m). 무등산 북서쪽 능선은 동구와 북구를 나누면서 내려서다가 장원봉에 다시 오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원봉()은 무등산 지봉()으로 속설에 향교가 옛날 봉우리 아래 있었고, 고을 사람 중 장원하는 자가 많아 이름이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광주)에 장원봉이 그려져 있다. 무등의 작은 뫼인 '꼬막뫼'가 꼬두뫼>꼬두매>호두()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향교는 현재 광주공원 성구산() 동쪽 기슭에 있다. 본래 풍향동() 또는 산수동에 있다가 호환()으로 광주읍성 안 즉, 성내면() '고향교평()'으로 이전했다. 1488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원봉 [壯元峯, Jangwonbong]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12, 국토지리정보원)

     

    13:54 그 옛날 그 유명한 지산유원지 전망대...지금은 건물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13:55 불황사를 지난다.언제나 조용하다. 그 흔한 불경소리 하나 들리 않는다.

     

     

     

     

    14:00

    14:03

    지남번엔 그냥 지나쳤던 깃대봉..오늘은 올라가 본다.

    14:08 깃대봉엔 표지석은 없고  나무에 깃대봉이라고 붙혀 놓았다.이나마도 고마운 일이다.

    깃대봉을 넘어가자 체육시설이 있고 조그마한 정자가 있는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깃댜봉으로 올라 다님길로 내려 간다.

    14:17

    14:18

    허심정..왼쪽으로 부덕정

    뱀딸기..옛날엔 뱀이 먹는 딸기라고 손도 대지 않았는데 요즘은 약으로 좋다나 어쩐다나...

    면역력을 높혀주고 항암작용을 하며 항염,항균,해독작용을 한다고....

     

     

    14:30 모두 건강합시다.

     

    14:31 산딸기꽃

     

     

    14:38

    14:38 조금 가파르게 올라 오면 넘어가는 고개를 만난다. 이곳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초점거리 116mm로 잡은 광주시가지

    300미리 풀로 당겨 본다.계림동 금호타은인가 보다.

     

     

    거목의 뿌리 사이에 씨앗이 떨어져 자란 나무 일까?

     

     

     

    15:19 삼각제...무슨 의미일까? 3가지를 삼가해야한다?

     

    지금은 폐허처럼 보이는 이곳이 옛날 삼각제가 어떤 곳이었길래 낡은 시멘트 정자와 탑등이 남아 있을까? 

     

     

    15:22  더 올라 가니 민가가 있는것 같아 그냥 내려와 다님길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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