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빛낸 선조
안 향(安珦)
1243(고종 30)-1306(충렬왕 32) 고려의 명신, 학자. 초명은 유, 자는 사온, 호는 회헌 주자학의 태두인 향은 영유의 손자인데, 고려 원종때 18세의 나이로 문과에 올라 도첨의중찬에 이르렸으며, 교육발전을 위해 섬학전이라는 육영재단을 설치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등 유학진흥에 힘써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일컬어진다. 그의 문하에는 백이정, 우탁 등의 석학이 배출되어 이제현, 이색 등에 계성되었으며 다시 권근,
변계량 등으로 유학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 내려왔다. 특히, 안향을 제
향하는 소수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알려졌으며 이어 전국 각지에
많은 서원이 세워져 사림의 근거지로 발전되어 왔다. 시호는 문성
안우기(安于器)
?-1329(충숙왕 16) 고려의 문신. 향의 아들 문과에 급제후 국학좨주 우
부승지. 밀직부사 등을 역임하고 대사헌을 거쳐 검교찬성사, 판전의사
사, 상호군에 오르고 순평군에 봉해졌다.
안 축(安軸)
1287(충렬왕 13)-1348(충목왕 4) 고려의 문신. 자는 당지, 호는 근재 문
과에 급제, 금주사록, 사헌규정, 단양부 주부를 지내고, 1324년(충숙왕
11) 원나라 제과에 급제하여 그곳 요양로 개주판관에 임명되었으나 부
임하지 않고 고려에 돌아와 첨의찬성사로서 판정치도감사, 감춘추관사
등을 지내셨으며, 민지의 편년강목을 개찬하고 경기체가인 관동별곡,
죽계별곡을 남겼다. 시호는 문정
안 원(安瑗)
1346(충목왕 2)-1411(태종 11) 고려. 조선의 문신으로 공민왕23년 문과
에 급제하여 공조전서, 형조판서, 좌부대언, 지신사를 지냈으며, 조선개
국 초 우군 동지총제로서 사은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고명, 인장
를 받아왔으며 경상도관찰사, 대사헌. 판한성부사와 개성유후사 유후로
서 동서강등처 병마절도사를 지내셨다. 시호는 경질
안창호(安昌浩)
1878(고종 15)-1938 독립운동가. 교육가 호는 도산 1899년 강서에 점진
학교 설립, 1902년 도미, 재미교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공립협회 창설,
1907년 귀국 평양 대성학교 정주 오산학교 설립, 1909년 박중화 최남
선 김좌진 이동녕 등과 청년학우회 결성, 1912년 미국에서 해외동포를
총망라한 대한인 국민총회 조직, 또한 LA에 청년학우회의 후신으로 흥
사단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하셨으며. 3.1운동후 임시정부 내무총장,
국무총리서리, 노동총판을 역임하며 독립신문을 창간하셨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 수여
안중근(安重根)
1879(고종 16)-1910 조선의 의사(義士), 독립운동가 1908년 대한의군
참모중장겸 특파독립대장 및 아령지구 군사령의 직책으로 의병군을 이
끄셨으며, 1909년 만주 하르빈 역에서 일제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등박
문(이또 히로부미)를 살해하여 현장에서 체포되셨으며 1910년 여순감
옥에서 사형되셨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 수여
안창남(安昌男)
1900(광무 4)-1930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안익태(安益泰)
1905(광무9)-1965 작곡가. 지휘자 1936년 애국가 작곡하셨으며 생전에
영국의 로이얼 필하모니, 이탈리아의 로마 교향악단을 비롯 각국의 유
명한 2백여 교향악단을 지휘하여 세계적 명성을 떨쳤다. 1957년 문화
포상과 1965년 문화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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