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0
양씨삼강문 1592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충민공(忠愍公) 양산숙(梁山璹) 일가의 충·효·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635년(인조 13)에 건립한 목조로 된 정려이다. 이곳에는 양산숙을 비롯하여 효자, 열녀, 절부 각 두 명씩을 모셨으나, 현재는 나주의 회진 임씨 문중에
출가하여 순절한 양산룡의 딸을 임씨 문중에서 따로 정려를 모시고 있어 6위의 정려만 모셔져 있다. 충민공 외에 충민공의 형제 양산룡과 양산수, 이들 형제의 어머니 죽산 박씨, 누이인 김광운의 처 양씨, 양산숙의 처 광산 이씨 등이다. 충민공의 아버지는 양응정이며 할아버지는 양팽손이다. 이 곳은 이들이 생전에 살았던 박뫼 마을 앞 산기슭으로 삼강문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평범한 건물로 각 기둥 사이에 홍살문을 달아 외부로부터 차단하였다. 외삼문은 평삼문이며 「梁氏三綱門」이란 현판은 1803년 이헌중이 썼다.
* 충절과 지조의 상징, 양씨 일가에 대하여 *
양산숙은 김천일 장군을 도와 의병을 일으켜 강화도에 진을 친 다음 고경명 장군의 밀서를 가지고 의주행재소로 가서 선조에게 의병의 활동과 적의 동태를 보고 하였다. 이에 선조는 즉석에서 그를 공조좌랑에 임명하고 교지를 내려 군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듬 해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무너지자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등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양산룡도 김천일 장군을 도와 의병에 가담하여 진이 강화도에 머무르고 있을 때, 호남 지방에서 재물과 곡식을 모아 만 여명의 군량을 조달하는데 앞장섰다. 그는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가족들을 피난시키기 위하여 나주 삼향포에서 뱃길로 떠나려고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적들이 나타나자 그와 어머니 박씨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이 모두 바닷물에 몸을 던져 지조와 정조를 지켰다. 정려는 여러차례 정문소초를 올린 끝에 인조 13년 생원 홍탁의 상소로 세워지게 되었다.
* 절부 - 양응정의 처 죽산박씨, 양산구의 처 지산이씨
* 효자 - 양산룡, 양산축 삼향포에서 왜적을 만나 어머니를 구하려다가 순절
* 충신 - 양산숙은 임진왜란때 진주성에서 왜병과 싸우다 투강 순절
* 열녀 - 양응정의 딸 김광운의 처는 정유재란때 삼향포에서 절사
* 소유자 - 제주 양씨 문중
* 규모 - 정면 5칸, 측면 1칸, 맛배지붕
* 시대 - 조선시대
의병장 양만용의 어등산 시
황룡강 누리길 박뫼(박산)마을
양씨삼강문 입구
입구 삼강문을 들어 가면 3세에 걸쳐 9정려각이 있다.
절부 김두남 처 제주양씨 지려
절부 증가선대부 예조참판 행통정대부 홍문관부제학 수경주부윤 양응정 처 정부인박씨 지려
효자성균생원 양산룡지려
충신 증 자헌대부이조판서행 공조좌랑시(시호시) 충민공 양산숙 지려
충신 - 증 자헌대부사 양산숙 지려, 절부 - 증 자헌대부사 조판서 충민공 양산숙의 처 정부인 이씨 지려이며
충신 양산숙을 이야기하자면
양산숙은 김천일 장군을 도와서 의병활동을 일으켜 강화도에 진을 치고 고경명 장군의 밀서를 가지고
의주 행재소로 가서 의병활동과 적의 동태를 보고 하였다고 합니다.
[출처] 충(忠)·효(孝)·열(烈)이 숨 쉬는 양씨 삼강문|작성자 모래성
김천일장군==>임진왜란때 의병장 https://blog.naver.com/visitnaju/221559250878
절부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충민공 양신수 처 정부인 이씨지려 열녀 성균진사김광윤 처 양씨지려 효자학생양산축
효자 - 학생 양산축 지려, 열녀 - 성균관 진사 김광운 처 양씨의 지려 등이 걸려 있습니다.
열녀 김광운의 처 양씨의 이야기로는
김광운에게 출가(혼인)한 양응정의 딸이 있으며 양산숙의 누이로써 정유재란 때
삼양포에서 일본군을 만나 끌려갔지만 순결을 지키기 위해 투신하여 자결했다고 합니다.
[출처] 충(忠)·효(孝)·열(烈)이 숨 쉬는 양씨 삼강문|작성자 모래성
제주양씨삼강전
제주양씨삼강전 설명문
다음 찾아간 곳은 월봉서원 빙월당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s4VtQ8bUro&ab_channel=%EA%B4%91%EC%A3%BC%EA%B4%80%EA%B4%91TV
외삼문인 망천문 서원을 들어가는 문입니다.
세 칸으로 나눠져 있는데 가운데 문은 신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해서 절대 열지 않습니다.
들어갈 때는 동쪽(오른쪽)을 나올 때는 서쪽(왼쪽)을 이용하는 것이 규칙입니다.
기대승을 비롯한 조선시대 학자들을 모신 월봉서원의 강당이다.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
월봉서원 빙월당 건물
주련에 있는 학문을 권하는 짧은 시 - 고봉 기대승
尋師負級上高菴 책을 지고 스승 찾아 높은 암자 오르니
牕裏羲光駕走驂 창문에 비치는 해그림자 달리는 말과 같네
今若不勤明又此 오늘 힘쓰지 않으면 명일도 마찬가지
猪龍他日恨何堪 돼지와 용의 다른 날 한탄을 어찌 견디랴
三千弟子不爲少 삼천 명의 제자 적은 것이 아니지만
入室升堂有幾人 입실하고 승당한 이 몇이나 있을꼬
政事文章皆是末 정사와 문장 이것 모두가 말단의 공부라
古今唯說德行人 예나 지금이나 오직 덕행 있는 사람을 말하네
文章灼灼春花艶 문장의 화려함은 봄꽃이 고운 듯
富貴盈盈川水渟 부귀의 넘실댐은 냇물이 고인 듯
霜落梁分何處覔 서리가 내리고 물막이 터지면 어디에서 찾으랴
月明秋夜玉壺淸 달 밝은 가을밤에 옥호가 맑네
讀書萬卷未了義 만 권의 서책을 읽어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면
何異平原走馬回 평탄한 언덕에 말을 달려 오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一字精微誰解得 한 글자의 심오한 뜻 그 누가 능히 해득하랴
聖賢貴學不貴才 성현은 학문 귀히 여기고 재주 귀히 여기지 않네
장판각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도서실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장판각 주련
一點靈臺愧不存 한 점의 영대도 보존치 못함 부끄러워
向來鸚鵡只能言 지난 날엔 앵무새가 말만 능히 했도다
如今庶取明誠力 이제 거의 명과 성의 힘을 취하면
木有深根水有源 나무엔 깊은 뿌리 물엔 근원이 있으리
내삼문인 정안문 문이 잠겨 있어 담너머로 들여다 본다.사당 안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조용하고 평안한 마을을 가지라'는
뜻이 담긴 정안문입니다.
숭덕사
고봉 기대승 선생님을 모시고 있는 월봉서원의 사당입니다.
봄과 가을, 일년에 두 번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숭덕사 담장
숭덕사 담장
전사각 서원에 제사 지낼때 필요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입니다.
동재 동쪽에 있는 기숙사입니다.
선배들이 생활하는 곳이고 이름은 명성재입니다.
명성재 주련
一氣流行天地中 한 기운이 천지 속에 유행하니
絪縕膠輵何渺綿 엉기고 얽혀 아득하고 멀고나
善惡感兮精侵盪 선과 악이 서로 만나 정기 움직이니
蒸雲吐氣相縈旋 구름 찌고 기운 토하여 서로 어울린다
歧陽鳴鳥久不聞 기산의 봉황울음 오래도록 듣지 못하니
서재 서쪽에 있는 기숙사입니다.
후배들이 생활하는 곳이고 이름은 존성재입니다.
존성재 주련
嗚呼此意誰能詮 아! 이런 뜻을 뉘라서 알손가
寥寥僅見永平君 적막한 중 겨우 영평 임금 보았으니
辟雍禮罷初寅緣 벽옹의 예절 끝내고 처음 인연 있었다
爾來風雨霾且曀 근래로는 비바람 어둡고 침침하였으니
書雲舊規空存焉 서운의 옛 규모만 부질없이 남았구나
https://www.youtube.com/watch?v=B80Tl1_cR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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