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4.
광주송정역에서 08:14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김제역에 내려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김제 지평선축제장에 도착
올때는 15:30경 셔틀버스로 김제역으로 와 16:06 김제발(10분 연착) 광주송정역 도착 (열차요금 5,200원,경로 3,800원)
축제장 입구
김제 지평선축제장은 벽골제 일원이다.
김제 벽골제[金堤 碧骨堤 ]
- 요약 전북 김제시 부량면(扶梁面) 용성리(龍成里) 소재의 비석 및 삼국시대의 저수지 둑.
지정종목 | 사적 |
---|---|
지정번호 | 사적 제111호 |
지정일 | 1963년 01월 21일 |
시대 | 백제 |
종류/분류 | 저수지둑 |
소재지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 119 지도 |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김제 벽골제는 한국 최고(最古)·최대의 저수지 둑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330년(백제 비류왕 27)에 쌓았고, 790년(원성왕 6)에 증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 고려·조선 시대에 수리하였다.
제방은 포교리(浦橋里)를 기점으로 월승리(月昇里)까지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루어 약 3km의 거리에 남아 있는데, 수문지임을 알려주는 거대한 석주(石柱)가 3군데에 1쌍씩 있다. 그리고 1925년 간선수로로 이용하기 위한 공사에서 원형이 크게 손상되었으며, 제방은 절단되어 양분(兩分)된 중앙을 수로로 만들어 농업용수를 흐르게 하였다.
1975년 발굴·조사에 따르면, 제방 높이는 북단(北端)이 4.3m, 남단(南端)이 3.3m이고, 수문 구조는 높이 5.5m의 2개 석주를 4.2m 간격으로 세웠으며, 서로 마주보는 안쪽 면에 너비 20cm, 깊이 12cm 요구(凹溝)를 만들고 목제(木製) 둑판을 삽입하여 수량을 조절하였다. 석축(石築)은 약 6m이며 가장 낮은 곳이 1.1m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제 벽골제 [金堤 碧骨堤] (두산백과)
단야루...김제 태수의 딸 단야를 기리는 누각
단야를 들어봤나요?
단야라는 처녀가 심술을 부리는 청룡에게 스스로 몸을 바쳐 벽골제 보수공사가 성공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벽골제가 오래되어 보수공사를 해야 했어요. 왕이 원덕랑을 김제에 보내게 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토목기술자인 원덕랑은 김제 태수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는데, 태수의 딸이었던 단야도 일을 도우면서 원덕랑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덕랑에게는 이미 '월내'라는 약혼자가 있었습니다.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더니 마무리 무렵 그만 둑이 터져 버리는 것이었어요.
벽골제 주변에는 청룡과 백룡이 살고 있었는데요, 백룡은 천재, 폭우, 변란 등을 막아주었지만, 청룡은 백성들을 괴롭히고 사람을 죽이는 등 온갖 피해를 입혔습니다. 백룡의 만류에도 청룡이 벽골제 보수의 완성 단계에서, 공사를 못하게 천둥, 번개를 동원한 폭풍우를 내리고 제방을 헐려고 온갖 심술을 다 부렸어요.
산 처녀를 청룡에게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져만 갔습니다. 이런 와중에 원덕랑을 보기 위해 월내낭자가 왔고, 김제 태수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월내낭자를 보쌈해 청룡에게 제물로 바치면 공사를 성공할 수 있고, 딸도 원덕랑에게 시집보낼 수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에요. 김제 태수는 사람들을 시켜 밤중에 월내낭자를 보쌈해 청룡이 사는 못으로 데려갔습니다. 낭자를 못에 던지려고 할 즈음, 사람들은 그녀가 단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김제 태수의 음모를 눈치 챈 단야가 대신 보쌈이 되어 왔던 것입니다. 단야는 순식간에 못에 몸을 던졌고, 그 후 보수공사는 순조롭게 끝날 수 있었습니다.
단야의 숨결을 간직한 벽골제의 물은 풍부히 흘러 만경 들판 수많은 농민들에게 젖줄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단야의 희생과 사랑을 더욱 칭송하게 되었고, 단야의 벽골제는 더욱더 빛이 나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무한히 베풀지만, 또한 가혹하기도 합니다. 전설에서의 백룡과 청룡이 이러한 자연의 두 얼굴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단야 이야기]는 전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김제 지역에 전승되는 쌍용놀이의 기원설화이기도 하고, 죽은 단야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는 단야각과 단야루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쌍룡놀이에서는 단야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청룡이 감복하여 단야를 살려주고 다시는 피해를 주지않는것으로 놀이를 이끌어 갑니다. 아래 동영상 참조...
이곳에는 김제 농경문화 박물관이 있습니다.
송점순할머니...축제관련자가 집에 찾아와 사진을 달라고 해 주었더니 여기에 이렇게 전시해 놓았다고...
박물관을 나와 벽골제 쪽으로...
벽골제비
쭉 늘어선 외국 음식점들...
제방으로 올라가니 연을 날리고 있다.
뚝길에 갈대와 억새가 어우러져 있다.
옛날의 수문...
제방 안쪽에서 줄다리기대회가 한창이다.
억새와 연
벽골제 수로
벽골제는 두개의 뚝 사이일로 물이 흐르는 수로역활만 하고 지금의 물놀이터는 인공으로 만든듯....
유람선도 있다. 저수지를 한바퀴 돌아 오는데 운임...1,000원...11시 40분에 가니 오전 운항이 끝났다며 13시에 오란다...결국 타보지 못했다.
호수에 설치된 조형물
여기도 수상카페 뒤로 다리로 연결된 섬에 설치된 조형물
호수 뚝길이자 코스모스 길...
ㅋ코스모스 밭...김제에 와서 아직 지평선은 보지 못했는데 여기는 꽃평선...꽃과 하늘이 맞다아 있다.
꽃평선이라 이름 붙여 본다.
코스모스 꽃밭에 해바라기 몇송이가...
날씨가 무지무지 덥다. 햇볕도 따갑고...
꽃은 민들레인데....줄기가...
허수아비쉼터에 허수아비는 없다.
전망대
전망대 3층에서 내려다 본 논에 새겨진 글씨
벼를 참 섬세하게 심어 완전 그림같다.
매뚜기잡기 체험장
4층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들
4층에서 보니 더 넓게 잘보인다.
.
전망대를 내려와 지나는 광장의 물길...꼭 용이 꿈틀거리는듯 길게 뻗어있다.
이곳에서 소머리국밥으로 점심을 먹는다. 도토리묵은 5,000원 저렴한데 맛이 별로...
여기가 정문일까?처음 들어 온 문은 축제장 문이고?
지평선축제 그씨가 새겨진 논이다.가까이서 보니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다.
메뚜기잡기 체험장..나도 한바퀴 돌아 본다.
아직 날개도 없는 새끼 메뚜기
위의 용처럼 흐르는 수로의 원천
ㅇ우리 애들 어렸을때 즐겨 보던 스머프
백설공주와 7곱난장이
벽골제 쌍룡
옛날 물을 터 올리던 용두레힘들지만 물이 퍼 올려진다.
물자세--옛날에 참 많이 해 본 일인데..
쌍룡놀이[雙龍─ ]
유형 | 놀이 |
---|---|
성격 | 민속놀이 |
전승지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과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전승되는 민속놀이.
내용
김제의 쌍룡놀이는 ‘벽골제(碧骨堤) 쌍룡놀이’라고 하는데, 벽골제는 명금산(鳴琴山)과 포교(浦橋)마을을 막아 노령(蘆嶺)에서 흐르는 자연수를 모은 큰 저수지이다. 이 쌍룡놀이는 현지의 전설과 놀이를 토대로 재현되어 1975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였다.
신라 원성왕은 궤몰상태에 있는 벽골제를 쌓도록 원덕랑(元德郞)을 파견하였다. 원덕랑은 당시 김제태수의 딸 단야(丹若)를 알게 되었고 서로는 어느 사이에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원덕랑에게는 고향에 월내(月乃)라는 약혼녀가 있어 단야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큰 축제(築堤)를 할 때에는 처녀를 용추(龍湫: 용소)에 넣어 희생으로 바쳐야 탈이 없는데 원덕랑의 고집으로 처녀를 용추에 바치지 않았더니 사고가 자주 일어났고 둑이 터졌다. 이때 김제태수는 월내가 원덕랑을 찾아 김제로 온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 딸의 행복을 위하여 월내를 제물로 삼을 묘책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계책을 눈치챈 단야는 오히려 자기가 죽으면 백성들의 원망도 사라지고 제방공사도 순조로울 것이고 원덕랑도 행복하게 될 것이라 믿고 몰래 월내 대신 용추에 빠져 죽었다. 이 연못에는 백룡이 살고 있었고 근처 연포천(連浦川)에는 청룡이 살고 있어 이 두 용을 쌍룡이라 하였다. 백룡은 인명을 수호하고 온순했으나 청룡은 풍우를 일으키고 비바람을 몰고와 인명 피해가 심하였다. 여기에서 백룡과 청룡이 서로 싸우는 쌍룡놀이가 발생하게 되었다.
쌍룡놀이의 제1장은 축제공사의 현장으로 동진강(東津江) 하류 왜뱀이들의 중앙을 인위적으로 막아 벽골제를 쌓았으나 청룡의 심술로 파괴되어 간다. 이때 나라에서 기술자 원덕랑을 보내 7개 주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보수의 역사(役事)를 시작한다. 김제태수 유품(由品)은 원덕랑을 도와 인부를 독려한다.
둑을 쌓기 위해 인부들은 토석을 운반하면서 <말밖기노래>를 부른다. “(메김) 어야라 동동 상사도야/(받음)들어라 동동 상사도야(얼럴럴) 상사도야/(받음) 얼럴럴 상사도야/열두자 막을 박을라면 우리네 인부들 욕들 보겠네/떴다 떴다 감독이 떴다 번득 들었다 번득 놓세/힘만 세도 소용없고 소리만 잘하면 제일이다…….”
제2장은 쌍룡의 출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일고 비바람이 치니 인부들은 겁에 질려 창백해지고 불안 때문에 동요가 일기 시작한다. 청룡이 나타나고 주위는 수라장이 된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큰 공사에는 처녀를 청룡에게 바치는 법인데 원덕랑의 고집으로 바치지 않아 이런 변을 당한다.”면서 원성을 한다. 이때 백룡이 나타나 청룡을 달랬으나 막무가내였고 드디어 싸움이 벌어졌으나 청룡을 당해내지 못하고 쫓겨 사라진다.
제3장은 단야의 희생으로, 청룡은 본성을 드러내어 광란을 부리며 둑을 무너뜨린다. 이때 이속들이 가마에 여인을 태우고 청룡 앞에 놓고 포대를 벗기니 단야의 모습이 드러나 모두 놀란다. 단야는 비통한 자세로 자기 부모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청룡에게 다가서서 “나를 제물로 할 것이니 앞으로 둑을 해치지 말고 잘 보호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한다. 그 같은 의연한 모습을 지켜본 청룡은 그 의로움에 깊이 감동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사라진다.
제4장은 단야의 소원무(所願舞) 장면으로, 태수는 달려와 기절한 딸을 끌어안는다. 다행히 기절한 단야가 깨어나고 태수는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사람들은 경사를 맞아 농악을 치고 <농부가>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이 놀이는 전설적인 요소가 강한 도작농경시대 초기에 발생한 향토신사(鄕土神祠)로 추측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쌍룡놀이 [雙龍─]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쌍룡놀이를 보고 시간이 남아 벽골제로 다시 가 본다.역시 억새가 예쁘다.
파아란 하늘에 하아얀 구름이 있어야 아름다운데 미세먼지때문인지 파란 하늘도 하얀 구름도 없어 아쉬운데로 구름을 담아 본다.
셔틀버스에서 찍은 축제장 가는 길의 코스모스
단야루앞에서 농악이 한창
쌍룡놀이...
젤 아래 동영상이 쌍룡놀이 동영상을 합쳐 편집한것으로 이것만 보면 된다.
위 쌍룡놀이 전체 편집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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