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4
순창에는 "순창 여인들의 길"이 있다.
순창 여인들과 관련된 설화 또는 전설,실화가 있는 곳들이다.
지난 봄 순창 용궐산을 산행한 후 섬진강에 있는 요강바위 안내판을 보고 "순창 여인들의 길" 이 10곳이 있어
한번 답사해 보고 싶었는데 오늘 순창 아미산 산행후 시간이 되어 10곳중 7곳을 답사했다.
안내나 이정표가 있고 네비에 나오는 곳은 찾기 쉬우나 안나오는 곳은 한참을 헤메였기에 다음 찾는 이를 위해 찾아가는 길을 상세하게 올린다.
순창 여인들의 길 안내판...오늘은 3번부터 시작해 2번-1번-4번-5번-6번-7번순으로 답사했다.
전북 순창군 팔덕면 창덕리 네비에서는 창덕리남근석...좁은 농로길 위에 있다.
창덕리 영어 표기가 산동리로 되어 있다. 사진을 클릭해 원본을 보면 글씨를 볼 수 았습니다.
높이 1.6m, 둘레 1.5m 대단한 크기에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세월이 흐르면 풍화작용에 의해 조각이 훼손될까? 싶은 마음에 당을 지어 그 안에 보관하면 어떨까 싶다.
전북 순창군 팔덕면 산동리 .. 네비에서는 산동리남근석 ..입구 주차장 옆에 정자가 있고 앞에 화장실이 있으며 뒤에 보이는 하얀 기둥이 남근석이다.
창덕리보다 더 높이가 높다.둘레는 비슷해 보인다...실측을 못하지만 1.8m 이상 되겠다.
인정샘은 네비에 나오지 않고 어디를 찾아 봐도 주소도 없다.두 남근석은 도로변에 이정표가 있는데 인정샘은 어디에도 안내가 없다.
이리 저리 한참을 헤메다 밭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물으니 아까 갔던 팔왕회관 바로 뒤에 있는데 음정이라고 한단다.
산동리 남근석 입구에서 마을 안으로 들어 가면 팔왕회관이 있고 바로 뒤에 인정샘이 있다.
팔왕회관 뒤로 돌아 가면 바로 인정샘이 있다.
팔왕 여근곡 인정샘
대모암은 네비에 대모암 치고...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197-22
순창 여인들의 길 안내판에는 대모암 다음 근처에 홀어머니 산성이 있는데 여기도 아무런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없다.
마침 대모암에 계신 분에게 여쭤보니 위 사진의 길을 가리키며 올라 가면 있다고 한다.
대모암 왼쪽 희미한 길로 올라가 왼쪽으로 가면 홀어머니 산성이 나온다.
다시 대모암으로 내려와 좌측 건물 처마 밑으로 보이는 길이 홀어머니산성 입구 길이다.
대모암 대웅전
귀래정...전북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산2-1
네비가 가르키는곳에서 이정표를 보고 귀래정을 찾는다.관리가 되지 않는지 귀래정 가는 길이 잡초에 뭍혀있다.
풀을 해치고 한참을 올라 가니 귀래정이 나온다.
귀래정에서 100미터 거리에 설씨부인권선문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아무데도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없다.
찾이 헤메다 올라간 곳이 귀래정 위 체육공원
다시 내려와 산아래 앞쪽에 고가가 여러채 있는곳일까?
귀래정을 내려와 차를 타고 산을 돌아 마을로 들어가 고가를 찾아 가니 그곳이 설씨부인권선문이 한켠에 있다.
귀래정 아래 다수의 고 건물이 있는곳 ...이곳은 조선조 신숙주의 아우 신말주 후손 세거지...
면적은 1,074㎡이다. 정면에 일관문(一貫門)이라 쓰인 3칸의 외삼문이 있으며, 안쪽에 안채로 들어가는 여견문(如見門)이 있고, 사랑채로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다. 안채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자혜당(慈惠堂)이 있고 오른쪽에는 남애 정사(南厓精舍), 왼쪽에는 남산사(南山祠)라는 사당이 있다. 생활 영역과 사당 영역은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남애 정사 오른쪽으로는 문화유산이 보관되어 있는 유장각(遺藏閣)이 있고, 유장각 오른쪽에는 충서당(忠恕堂)이 있으며, 충서당 뒤쪽 언덕 위에 귀래정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설씨 부인·신경준 선생 유지[귀래정 신말주 후손 세거지] [薛氏夫人-申景濬先生遺址-歸來亭申末舟後孫世居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설씨부인신경준선생유지
[薛氏夫人申景濬先生遺址 ]이칭별칭 | 귀래정신말주후손세거지, 歸來亭申末舟後孫世居地 |
---|---|
유형 | 유적 |
시대 | 조선 |
성격 | 유적, 세거지 |
건립시기·연도 | 조선시대 |
규모(면적) | 1,074㎡ |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534번지 |
관리자 | 신진식 |
문화재 지정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제86호 |
문화재 지정일 | 1994년 08월 10일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에 있는 신말주의 처인 설씨부인과 신경준 등이 태어나 살았던 터.
개설
설씨부인 신경준 선생유지는 조선 중기의 문신 신말주(申末周)와 부인 설씨부인(薛氏夫人)을 비롯하여 신말주의 10세손 신경준 등 후손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곳으로,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에 위치한다. 일명 이곳은 귀래정(歸來亭) 신말주 후손 세거지로 알려져 있으며,1994년 8월 10일에전라북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설씨부인(1429∼1508)의 본관은 옥천(玉川)이다. 설백민(薛佰民)의 딸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귀래정 신말주와 혼인하였다. 신말주는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세조대 훈신 신숙주(申叔舟)의 아우이다. 1416년(세조 2)에 벼슬을 버리고 부인과 함께 순창의 처가로 낙향했다. 이후 이들의 후손이 이곳에서 대대로 살았다.
설씨부인은 문장과 서화에 능하였다. 1482년(성종 13)에 강천사 불사(佛事)를 위해 쓴 권선문첩(勸善文帖, 보물 제728호)과 강천사를 그린 채화(彩畵) 14첩이 전해진다. 신말주의 후손인 신경준도 이곳에서 출생하였다.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은 1712년(숙종 38) 신래(申淶)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순민(舜民)이고, 호는 여암(旅菴)이다.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학덕이 높았다. 26세가 되던 해인 1741년(영조 17) 소사(素沙)로 이사해 순창을 떠났다. 1714년(숙종 40) 증광 문과에 급제한 뒤 휘릉 별검(徽陵別檢)을 시작으로 성균관 전적에 올랐다.
1770년(영조 46)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올랐다. 이 때 영조는 8명의 문사를 뽑아 『문헌비고(文獻備考)』의 편찬을 명했다. 그는 여기에 뽑혀 『여지고(輿地考)』의 편찬을 맡았다. 그 뒤 내외직을 두루 거쳐 제주목사를 끝으로 벼슬을 그만두었다. 1779년(정조 3) 고향인 이곳 순창 남산대 옛집으로 돌아와 지냈다. 1781년(정조 5)에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신경준은 문신으로서보다는 지리학과 언어학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서 이름이 높다. 그는 『강계지(疆界志)』·『의표도(依表圖)』·『도로고(道路考)』·『산경표(山經表)』·『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유집으로 『여암집(旅菴集)』이 있다.
이와 같이 이곳은 신말주와 부인 설씨부인을 비롯하여 신경준 등 그의 후손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남산대 일원의 유지(遺址)로, 면적1,074㎡이다.1996년 복원 사업이 추진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우선 외삼문인 일관문(一貫門)을 들어서면 왼편에 만재 고령신공당식 공적비(晩哉高靈申公瑭植功績碑)와 오천(梧川) 신익휴(申翼休)공 공적비가 있다. 안채로 통하는 여견문(如見門)을 들어서면 정면에 자혜당(慈惠堂)를 비롯하여 우측에는 남애정사(南厓精舍), 좌측에는 사당인 남산사(南山祠), 남산사창건기(南山祠創建記)의 비가 있다.
한편 유장각(遺藏閣)에는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는데, 정면에 귀래정연혁비(歸來亭沿革碑)가 세워져 있고, 유장각 우측 편에는 충서당(忠恕堂)이 있으며, 충서당 뒤쪽에는 귀래정(歸來亭)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설씨부인신경준선생유지 [薛氏夫人申景濬先生遺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신말주: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자집(子楫), 호는 귀래정(歸來亭). 고령 신씨의 시조 신성용(申成用)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려 말에 예조 판서·공조 판서를 역임한 신덕린(申德隣)이다. 신덕린은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아들 신포시(申包翅)와 함께 개성 두류산에 은거하였다가, 다시 전라도 광주의 서석산으로 옮겨 갔다. 신말주의 할아버지 신포시는 신장(申檣)·신평(申枰)·신제(申梯) 등 세 아들을 두었다.
이 가운데 신말주의 아버지는 직제학과 부제학을 거쳐 오랫동안 대제학으로 있다가 나주로 낙향한 신장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나주에 거주하였을 때 결혼한 정유(鄭有)의 딸이다. 신말주의 형제는 신맹주(申孟舟)·신중주(申仲舟)·신숙주(申叔舟)·신송주(申松舟)·신말주(申末舟) 등 5형제이다. 이들 가운데 신숙주·신송주·신말주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특히 신숙주는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공이 매우 컸다. 신말주의 처는 순창 설씨 설백민(薛伯民)의 딸이고, 손자는 이조 판서를 지낸 신공제(申公濟)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말주 [申末舟]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ㅅ사진을 클릭해 나오는 원본으로 꼭 읽어 보시길 권장합니다.
설씨부인신경준선생유지 자혜당
남애정사
남산사
1499년 신말주(申末舟, 1439∼?) 작. 화첩. 종이에 수묵.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42호. 전라북도순창군순창읍신길수 소장.
신말주는 단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권지정자(權知正字)가 되었다. 세조 때에는 형 신숙주(申叔舟)가 단종 폐위에 가담함에 따라 벼슬을 사양하고, 순창에 내려와 귀래정을 짓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
말년에 귀래정에서 70세가 넘는 노인인 이윤철(李允哲)·안정(安正)·김박(金博)·한승유(韓承愈)·설산옥(薛山玉)·설존의(薛存義)·오유경(吳惟敬)·조윤옥(趙潤屋)·장조평(張肇平)의 9인과 더불어 십노계(十老契)라는 계회를 가졌다.
계원 10명이 각기 한 첩씩 계첩을 제작하여 갖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이 한 첩만이 남아 있고 첩이 아닌 축으로 제작한 것으로는 장성 김걸(金傑)의 소장본이 전한다.
한 장에 한 인물의 배치하고 기물이나 배경은 소나무·시녀·바위 등 최소한으로 제한하였다. 화면 상단에는 각 인물의 생활·인격·사상 등을 읊은 4행의 시를 적었다. 산수화 위주에 계회 장면을 점경 인물(點景人物)로 작게 표현한 16세기 궁중의 계회도와 달리 인물 위주로 표현한 점이 주목된다. 대부분 방석 위에 앉아 있는데,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술을 이기지 못하고 드러누운 경우도 있다.
인물의 표현을 보면 곡선 위주로 둥글게 묘사하였고, 붓의 첫머리에 약한 정두(頂頭)를 세웠다. 계회도로는 제작 시기가 이른 것에 속하고 궁중의 공식적인 모임인 계회도가 아닌 문인들의 사적인 계회를 그린 기록화라는 점에서 회화사적 가치가 있다. 1790년에 김홍도(金弘道)가 이 화첩을 다시 모사한 「십노도상도(十老圖像圖)」가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말주선생의십로계첩 [申末舟先生─十老契帖]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유장각
충서당
귀래정은 이곳을 먼저 찾은후 제일 윗 건물 옆 사이길로 귀래정에 올라 다시 내려 오는게 좋다.
그래서 반대편 귀래정 오르는 길은 관리가 안되고 찾는 이가 없으니 잡초가 우거질 수 밖에..
설씨부인권선문이 있는 신말주선생 후손 세거지를 끝으로 광주로...
오늘은 순창 여인들의 길 1번부터 7번까지 답사를 했다.
나머지 8,9,10번은 다음 기회에....
지난 4월 15일에 갔던 용궐산 산행후 찾은 요강바위(순창 여인들의 길 10번째)
요강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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