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6. 광주청정산악회와 함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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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7
* 장도바위
적상산성 서문 아래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이 바위는 고려 말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혀 장도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적상산성
[ 赤裳山城 ]
유형 | 유적 |
---|---|
시대 | 고려 |
성격 | 산성 |
건립시기·연도 | 고려 말기 |
규모(면적) | 지정면적 21만 4975㎡ |
소재지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제146호 |
문화재 지정일 | 1965년 07월 10일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고려 말기의 산성.
내용
사적 제146호. 지정면적 214,975㎡, 둘레 약 3,000m. 현재 북문지·서문지 및 사고지(史庫址)가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산성은 석축으로 둘레 1만6920척, 높이 7척이었으나 이제는 폐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성내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이 4개소, 우물이 23개소 있었다.
1612년(광해군 4)에 실록전(實錄殿)이, 1614년에 사각(史閣)이, 1641년(인조 19)에 선원각(璿源閣)·군기고(軍器庫)·대별관(大別館)이 1643년호국사(護國寺) 등이 세워졌는데, 이들은 별장·참봉·승장 들이 거느리는 무리에 의하여 수호, 보존되었다.
성벽은 무너져서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불과 90여년 전만 하더라도 사각 등의 수리를 위하여 고종이 수리비를 지급하였다는 사실이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 성이 있는 상산(裳山)은 상성산(裳城山)이라고도 하는데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요로이기도 하였으며, 산 가운데에는 넓은 분지가 있다.
고려 말에 거란병이 침입하였을 때 인근 수십여 곳의 군현이 도륙되었는데도 여기에 사는 주민들만은 그 참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최영(崔塋)은 이 곳에 산성을 축조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하였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崔潤德)도 이곳을 살펴본 뒤 반드시 축성하여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말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적상산성 [赤裳山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1:28 향로봉 인증샤 체증으로 표지판막 찍고 내려 왔다. 약 1시간 5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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