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적상산

[스크랩] 적상산 탐방

무량청정1 2010. 1. 24. 21:09

 무주 적상산 산행...힘들지 않고 지루하지 않은 눈꽃이 없어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오늘 산행중 찍은 160여장의 사진입니다.그냥 재미로 보시길...

 오늘 산행지도

적상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중앙에 있는 산.
높이는 1,034m이다. 덕유산국립공원 지역에 속하며, 4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붉은색 바위지대가 마치 산이 붉은 치마를 입은 것 같다고 하여 적상(赤裳)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고, 한국 100경 중 하나로 꼽힌다. 중생대 백악기 신라층군(新羅層群)에 속하는 자색의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은 해발고도 850~1,000m의 평정봉(平頂峰)으로 주봉(主峰)인 기봉과 향로봉(1,025m)이 마주보고 있고, 정상 일대가 흙으로 덮인 토산(土山)이라서 나무숲이 매우 울창하다. 산정이 평탄한 반면 지면에서 산허리까지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세가 험준하며 물이 풍부하므로 방어상 유리한 조건을 갖춘 천혜의 자연요새이다. 그 까닭에 적상산성(사적 146)이 축성되었는데,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축조를 건의하였다고 전해진다.
산중에는 안국사(安國寺)와 조선시대에 승병을 양성하던 호국사(護國寺) 등의 사찰이 있고, 장도바위·장군바위·처마바위·천일폭포·송대폭포·안렴대 등의 자연명소가 있으며, 장도바위는 최영 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히자 장도(長刀)로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정상 분지의 해발 800m 지대에는 산정호수(적상호)가 있는데, 양수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인공호수이다.



 88올림픽고속도로 남원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간식을..

 광주 문예후문 08:00출발 2시간14분만에 산행들머리 서창마을 도착

 의병장 장지현 장군  

 

조선 선조때의 의병장으로 자는 명숙, 호는 삼괴장, 본관은 구례이며, 백야 장필무 선생의 둘째 아들이다.

어려서 부터 부친 밑에서 엄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당시 정치 싸움이 심하여 관직에 나아갈 뜻을 포기하고 고향에서 문무에 힘써 그 명망이 높았다.
1590년(선조 23)에 천거를 받아 평안도 병마절도사 신립 장군의 부장이 되고, 변방 토벌에 공을 세워 평난원종공신록에 올랐다.
이듬해 사헌부감찰에 올랐으나 얼마 후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와 황간에서 청년들을 교육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국가가 위급함을 통감하게 되어 재산을 털어 의병을 규합하여 훈련시켰다. 이 해 5월 왜병 흑전의 2만 병력과 모리의 3만 병력은 파죽지세로 북상해 왔다. 병력, 무기 등이 왜군에 비할 수 없으나 자연요새를 이룬 추풍령에 진을 치고 흑전의 주력 부대를 약화시키려고 하였다.
추풍령 싸움에서 의병들의 결사적인 전투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나 왜군은 4만이 넘는 병력으로 재차 공격해 와서 의병들은 백병전으로 싸우다가 장지현과 함께 전사하였다.

그의 충의와 호국정신을 행재소에서 들은 선조는 1592년 7월 26일 병조참의에 추증하였고, 1697년(숙종 23) 영동 화암서원과 무주 죽계서원에 봉향되었다.
1864년(고종 1)에 순절비가 세워지고, 1980년 황금면(지금의 추풍령면) 사부리의 순국한 전적지에 충절사를 건립하여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고 있다.

묘소는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탁천리에 있다.

 산행들머리의 의병장 장지현 묘소 옆 소나무

 산행 시작

 적상산으로 오르기 전 적상산 공원?

 

 천하만인의 보배로운 산 적상산 이라 새겨져 있다.

 

 오늘의 산행 코스가 그대로 표시되어 있다.

 

 오르는 길은 지그재그로 길을 내어 올라가는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잠시휴식...

 오르는길에서 본 고목..둘레가 족히 2미터는 되리라...

 이 조그마한 나무가 큰 바위를 짊어지공...지가 무슨 세상의 모든 고해를 질머지듯..

 

 

 

 장도바위는 최영 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히자 장도(長刀)로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장도바위를 찍느라 여념이 없는 광천수님

 

 

 

 

 

 

 

 적성산성

 

 

사적 제146호. 둘레 길이 5,584m, 면적 70만 2867m2. 적상산은 신라와 백제가 각축을 벌였던 요지로서, 고려시대 거란족이 침입했을 때 인근 수십 군현의 백성들이 도륙되었는데도 이곳 사람들은 안전하였으므로 최영()이 산성쌓기를 상주한 일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여지승람(輿)》 <고적조()>에는 고성의 “석축 둘레는 1만 6,920자, 높이가 7자였는데,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세종 때는 체찰사(使) 최윤덕()이 이곳을 답사하고, 반드시 산성을 쌓고 보존해야 할 곳이라고 건의한 일이 있었으므로 지금의 성터는 세종 때나 그 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1612년(광해군 4) 이곳에 실록전(殿)이 세워졌고, 1614년에는 사각()이 세워짐으로써 5대 사고()의 하나가 되었다. 또 1641년(인조 19)에는 선원각() ·군기고() ·대장관()이 건립되었다. 이 밖에 상원사() ·중원사() ·호국사() 등이 있어 별장() ·참봉 ·승장()들이 지켰다.

지금은 성벽이 무너져 울창한 숲 사이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을 뿐 사각과 건물들은 터전만 남아 있다.

 

 

 적상산은 가을 단풍의 산인가 보다. 산위까지 단풍나무가 아직도 잎이 지지 않고 서 있다.

 

 

 

 서창 삼거리..여기서 좌로 향로봉으로 ..

 서창삼거리에서 향로봉이 500미터인데 10여분만에 도착..능선이라 그런가 아님 거리가 ...

 

 향로봉에서 바라본 전경

 

 

 다시 서창 삼거리 도착...안국사 방향으로...

 

 적상산 정상 못 미처에서 점심을 먹고..

 고로쇠나무 팻말이 붙어있는 나무 부위가 엄청 커져 있따.

 여기 나무들은 모두 그런가?나무가 자라다가 불록 불록..

 

 

 

 적상산 정상의 통신안테나..정상은 그냥 지나간다.

 안국사로 내려가지 않고 안렴대로...

 

 

 

 

 

 

 

 안렴대에 도착하니 길이 없다..다시 되돌아 안국사로...

 안렴대

 안렴대에서 바라본 전경

 적상산의 단풍나무..내년 가을에 꼭 와봐야 겠다.

 하산길에 눈이 쌓여 미끄럽다.모두 아이젠을 착용하고..

 

 

 

 

 

 안국사 해우소

 앞에는 한국사 뒤에는 안국사(安國寺)?

 

 

 우물이 꽁꽁 얼어 있다.

 

 안국사 일주문..국내제일정토도장

 

 

 

 안국사 일주문을 지나 저수지쪽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송대.치목마을로...

 

 

 

 

 송대계곡위의 산속 얼음이..아니 고드름이...

 

 

 

 

 

 

 

 

 

 

 송대 계곡의 얼음..수정처럼 아름답다.너무 아름다워 계속 찍어 본다.

 

 

 

 

 

 

 

 

 

 

 

 

 

 

 

 

 

 

 

 

 

 광천수님이 찍을려고 폼 잡는데 먼저..

 

 

 

 

 

 

 

 폭포에 얼음이 아니 고드름이 장관인데 카메라가..영..흐리고 흔들린다.

 

 

 

 

 

 

 

 

 

 치목마을 날머리 도착..점심시간 포함 약 4시간 산행

 치목 마을 이모저모

 

 치목마을 담장의 벽화

 치목 삼베짜는 마을...

 

 

 

 

 

 

 은행나무밑의 정자...정자 기둥이 등나무 줄기처럼... 

 

 치목 마을비

 

 날머리 치목마을 에서 뒷풀이를..

 

 

 

 오는길 장군휴게소에서 잠시 용변을......

 오는길,,,서산에 걸림 해...이로서 오늘 산행의 대미를 장식한다.

오늘 산행 같이 한 님들..항상 행복하시길...

출처 : 화정신협산악회
글쓴이 : 무량청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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