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19.
허리를 다친 뒤 오랫만에 시운전(?)차 무등산 증심사주차장-증심교-바람재-늦재-원효사로 다녀 왔다.
우리 순흥안씨 영사제와 세장산도 둘러 볼겸....
순흥안씨 영사제..내 17대할아버지이신 충청도관찰사를 지내신 휘 공(珙)할아버지의 유적을 기리고 관리하는 곳이다.
영사재 중건기
이곳에 세워진 영사재는 순흥안씨 12세손인 감사공 휘 공의 생전의 업적을 기리고 그 유적을 전수 보전하고자 공의묘소가 소재하고 있는 무등산록인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107의 2번지 묘좌역에 서기 1887년 정해3월에 영사재를 처음 건립하게 되었다.
감사공 휘 공께서는 조선 세종조 서기 1447년 정묘에 충청도병마관찰사를 역임하고 병조판서로 증직되신 가선대부 휘 인후의 차남으로 서울에서 출생하고 스스로 천문학을습득하여 성종 서기 1490년경술에 병과에 등과하니 관상감,천문학 습독관을 거쳐 서기1508년 중종3년무진에 가선대부 충청도관찰사로 재임중 서기 서기1521년 중종16년 신사에 발생한 무옥으로 공의 사촌이며 좌의정이었던 정민공 휘 당께서 그의 아들 처겸이 간신들을 숙청하려다 오히려 모함을 받고 부자 일문이 참화를 입게 되자 관직을 버리고 광주로 낙향하여 무등산 계곡에서 촌부야인으로 생활하시다 서기1530년 중종25년 경인에 향년 83세를 일기로 생을 마치시었다.배위 정부인 금성정씨는 고려조때의 장군으로 시호가 경렬공이신 휘 지장군의 손녀요 감사 휘 정의 여(女)로 묘는 무등산 서록 증심사 북편유교석문 상측묘좌에 공묘와 상하분으로 모셔져 있다.
영사재는 1958년 무술년에 중수를 한바 있으나 그후 건물이 노후화 됨에 따라 부외직전의 상태까지 이르렀는데 본건물의소재지가 공원녹지및 생태보전지역과 개발제한구역으로 건축이나 증개축 및 수리도 할 수가 없어 그동안 후손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방관만 할 수 밖에없었다.
그러던차 2003년 계미 10월5일 본 종회의 임시총회 개최시에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새로운 종회 임원의 개선으로 회장에감사공의 18세손인 병화와 상임부회장에 병식과 감사역에는 감사공의 4대 종손인 성균진사 휘 경의 종손인 운곡종중대표와 감사공 종중위 감사역을 마겸하고 있는 용석과 병국이 선출되자 이사인 판기 외 15명의이사진으로 영사재중건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회장 병화와 상임부회장 병식 감사 용석의 주도로 재건축에 따르는 관계기관의 인허가 및 제반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연면적 28평에 건축비 3억원의 예산을 들여 문화재시설전문시공업자인 정우철로 하여금 서기 2004년 갑신6월7일에 착공하여 7월30일 상량식을 거행하고 동년 10월31일 역사적인 영사제 중건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이러한 모든것이 명문대성을 이루었던 선조님의 음덕이라 후손들은 마땅히 그 근본을 알고 선조에 대한 공경과 함께 종중에 대한 무한한 긍지로 내일을 밝혀가야 하리라.
서기 2004년 갑신 10월31일 순흥안씨 찬성공파 감사공종중
기실비
기실비 옆면
가선대부 충청도관찰사 순흥안공 휘 공 기실비
가선대부 충청도관찰사 감사공 휘 공 기실비
이곳에 세워진 영사재는 순흥안씨 12세손인 감사공 휘 공과 선조들의 업적을 전수보전 하고자 무등산 麓(산기슭록)인 광주시 동구 운림동 107-2번지 묘좌향에 1887년 정해 3월에 본 제각을 처음 건립하게 되었다.
감사공 휘 공의
謹按(근안)컨데 시조는 고려 신종조에 興威衛保勝別將흥위위보승별장을 지내시고 神虎衛上護軍신호위상호군에 추봉되신 휘 자미이시다.
관향인 순흥은 경북 영주군에 있는 지명이다.
2세조는 휘 영유요 추밀원부사로상호군에 추봉되었고
3세조는 휘 부니 밀직부사판도 수태사문하시중에추증되었고
4세는 휘 향이요 관은 벽상삼한삼중대광(匡)도첨의니 시호는 문성공이다.
5세조는 휘 우기요 관은 광정대부검교첨의찬성사로 봉 순평군이며 시호는 문순공이다.
6세조는 휘 목이요 관은 현관대제학으로 봉 순흥군이며 시호는 문숙공이다.
7세조는 광정대부정당문학예문관대제학으로 봉 순성군이며 시호는 문혜공이다.
고조의 휘는 원이요 관은 봉翊(익)대부형조전서였으며 시호는 경질공이다.
증조의 휘는 종약으로 해주목사를 역임하고 후에 정헌대부이조판서겸 동(同)지경筵(연)춘추관 성균관 의금부사 홍문관 및 예문관 대제학에 추증되었다.
조부의 휘는 경이니 증조 휘 종약의 차남으로 한성부윤을 지내시고 다섯아드님이 과거에 급제하여 호조참판에 증직 되셨으며 손자인 휘 당이 좌의정에 오르자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지경연 춘추관 성균관 판의금부사오위도총부총관세자이사에 추증되시었다.조비(할머니)정경부인백천조씨는 부흥군 휘 반의 따님으로 5남2녀를 낳으시고 항시 인의로서 교자하여 5남이 모두 등과하여 왕으로 부터 세미와 세육을 하사 받으셨다.
고의 휘는 인후이니 찬성공 휘 경의 다섯째 아드님으로 1447년 세종 정묘에 백숙과 동방급제하여 가선대부충청도병마절도사를역임하고 자헌대부병조판서에 추증되셨다. 비는 정부인 옥천전씨로 진의부위를 지낸 휘 의의 따님으로 아들 셋을 낳으니 감사공 휘 공은 그 둘째 아드님이다.
공은 1447년 세종 정묘에 출생하여 스스로 천문학을 습독하고 1490년 성종 경술에 양과에 등과 1508년 중종3년 무진에 가선대부충청도관찰사로 재임중 1521년 중종16년 신사에 공의 4촌이며 좌의정이었던 정민공 휘 당과 그 아들 처겸이 신사무옥으로 부자일문이 참화를 당하자 관직을 버리고 광주로 낙향하여 무등산 계곡에서 촌부야인으로 생활하시다 1530년 중종25년 경인에 향년83세를 일기로 생을 마치셨다. 배위 정부인은 금성정씨시경렬공 휘 지장군의 손녀이며 감사공 휘 정의 녀로 묘는 무등산 서록 증심사북유교석문상묘자로 공묘상하분으로 모셔져 있다.영사제는 1958년 무술년에 중수한바 있으나 그후 건물이 노후되어 도도괴 직전까지 이르렀어도 건물소재지가 공원녹지및 생태보전지역으로개발제한지역이 되어 증개축 및 수리도 할수 없어 그동안 후손들은 방관할 수 밖에 없었다.그러던중 2003년 계미10월5일 본 종회 정기총회시에 개혁적인 새로운 종회 임원의 선출로 회장에 감사공의 18세손인 병화와 상임부회장에는 병식과 감사역에 감사공의 4대 종손인 성균진사 휘경의종파인 운공공종중의 대표와 감사공 종중의 감사역을 겸하고 있는 용석과 병국이사에 판기외 15명이 선출되자 제종원으로 영사재중건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외장 병화와 감사 용석의주도로 관계기관의 인허가와 제반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연면적 28평에 건축비 3억원을 들여 문화재시설전문시공업체로 하여금 2004년 갑신6월7일에 착공 동년 10월31일 영사재 중건의 완공을 보게 되었다.이 모든것이 명문대성을 이룩한선조들의 음덕이라 감음할 뿐이요 이제 후손들은 마땅히 그 근본을 알고 선조에 대한 공경과 함께 구국충절의 영웅이신 도산 안창호 선생과 안중근이사를 배출한 명문의후예로서 긍지를 간직하고 조곡의 내일을 밝히는 등불이 될지라
서기 2004년 갑신 10월31일 순흥안씨 찬성공파 감사공종중 종원일동 근수
나머지는 담에 재 촬영하여 올린다.
영사제 주 건물..문이 잠겨 있어 내부는 볼수가 없다. 연락처도 보이지 않는다.
증심교에서 증심사쪽으로 100여미터 올라가면 조그만 다리를 건너좌측에 바위 절벽이 있는데 옛날 이 절벽에 순흥안씨세장산(順興安氏世葬山)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다시 광주에 온 1996년 이후에 보니 누군가 글씨를 훼손하여 형태만 남아 있더니 지금은 담장이 덩굴이 감싸고 있다.
이바위 절벽 윗쪽으로 영사제의 주인공 휘 공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다.
17대 할아버지 휘 공 묘역..여름철이라서인지 관리를 안하는 건지 풀이 무성하다.
휘 공 할아버지 묘비
묘역으로 들어 가는길..
증심교에서 토끼등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라 거기서 부터 250여 걸음 걸어 올라 가면 우측으로 길이 나 있으며 바로 휘 공 할아버지 묘역이다.
등산로에서 본 묘역...입구
말끔하게 정리된 묘역
2017.11.25 찍은 묘역
휘 공 할아버지의 묘 아래 았는 묘 상석옆면...이분들이 누구인지 알아 보려 담아 왔다.
'등산 > 무등산 국립공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등산 피서 (0) | 2014.08.16 |
---|---|
증심사 버스 종점에서 - 바람재-원효사 버스 종점으로 (0) | 2014.06.30 |
무등산 봄 야생화 (0) | 2014.04.05 |
무등산 봄맞이 산행 (0) | 2014.04.01 |
새인봉 사진 동영상 (0) | 2014.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