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능선에서 동문 배바위쪽으로..
왼쪽 끝 지점이 동문이다.
멀리 허준 세트장이...
성벽을 따라 동문으로..
사적 제64호. 지정면적 226,790㎡, 둘레 약 2,700m. 현재 동문·서문·연못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의 험준한 바위산을 등지고 남봉(南峰)과의 사이에 넓은 안부(鞍部:산의 능선이 말안장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를 둘러싼 산정식 석성(山頂式石城)이다.
성벽은 앞뒷면을 다같이 모난 자연석과 가공석으로 단면 사다리꼴로 쌓았으며 동·서 두 곳에 성문을 설치하였다. 서문은 거의 허물어졌으나 동문은 너비 1m, 높이 1.5m 가량의 거석을 정연하게 쌓은 성문이 완전하게 남아 있으며, 그 아래편에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시조에 관한 전설이 전하는 작은 못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성의 초축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태종실록≫에 1410년(태종 10) 2월에 화왕산성을 위시하여 경상도와 전라도의 중요한 산성들을 수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세종실록≫ 지리지에 화왕산석성은 둘레가 1,217보이며, 성 안에 샘 9곳, 못 3곳과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하는 기록에서 이때에 수축한 성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미 허물어진 성들을 수축한 것이므로 원래의 성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고려나 신라가 이곳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나, 또는 그럴 만한 뚜렷한 이유도 없으므로 이 산성이 삼국시대 빛벌가야[非火伽倻]의 고성이라는 이 지방의 전설은 믿을 만하다 하겠다.
창녕은 낙동강 중류에 넓게 펼쳐진 곡창지대의 중심지이며 서부 경남지방에 대한 교통·군사상의 요충지였으므로 서부 경남지방으로 진출하려는 신라에 대비하여 빛벌가야가 여기에 견고한 산성을 쌓았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성은 성종 때 폐성되었으나 군사상의 요충지이므로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 곽재우(郭再祐)가 이 성을 본거지로 하여 영남 일대에서 눈부신 전공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성은 이때 곽재우에 의하여 크게 수축되었고 임진왜란 후에도 한두 차례 중수되어 지금까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동문을 나와 허준 세트장으로...
동문을 나오는 우리 님들...
버들강아지가 활짝..
허준 세트장 도착
이곳에서 허준 드라마만 촬영한게 아니고 상도,대장금,왕초등 많은 드라마가 좔영된 세트장이다.
그러나 지금은 관리가 돼지 않아 낡고 허물어지고 엉망이다.
물레방아와 가마솥..그리고 움막속에도 방아가 있는데 모두 망가진 상태다.
세트장 건너에 있는 우물...한 모금 마셔보니 참 시원하다.우물가라 습도가 높아서 일까? 이곳에 제법 진달래가 피어 있다.
세트장 바로 지나 소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먹고...약 35분 정도 소요
다시 출발
세트장에서 관룡산으로 가는 길..임도엔 개나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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