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1 개천절 3일 연휴중 1박2일 통영을 다녀왔다.
통영의 명소를 두루 살펴보는 일정으로...
네비게이션으로 충렬사를 찍어 충렬사주차장에 주차비 1000원을 주고 주차한 뒤 충렬사로 내려가는길
종 목 | 사적 제23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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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통영 충렬사 (統營 忠烈祠) |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제사유적/ 제사터 |
수량/면적 | 9,049㎡ |
지정(등록)일 | 1973.06.11 |
소 재 지 | 경남 통영시 명정동 213외 |
시 대 | 조선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재)통영충렬사 |
관리자(관리단체) | (재)통영충렬사 |
임진왜란 중에 수군통제사로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충무공의 활동무대가 한산도를 중심으로 한 통영 근처였기 때문에 남해 충렬사와 함께 이곳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선조39년(1606)에 왕의 명령에 따라 제7대 이운용 통제사가 창건 하였으며, 현종4년(1663)에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린 충렬사 사액을 받은 사액사당이다. 그 후에는 역대의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왔다. 경내에는 본전, 정문, 중문, 외삼문, 동서재, 경충재, 숭무당, 강한루, 유물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경내에는 많은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숙종7년(1681)에 60대 민섬통제사가 세운 통제사충무이공충렬묘비이며 충무공 후손통제사 비각 2동에 6기가 있고, 이운용 통제사 비각, 김중기 통제사 비각, 유형 통제사 비각이 있다. 이곳에는 명나라 신종황제가 내린 8가지의 선물인 명조팔사품(보물440호)과 정조가 충무공전서를 발간하고 1질을 통영충렬사에 내리면서 직접 지어 내린 제문 등이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임진왜란< 壬辰倭亂 > 중 수군통제사< 水軍統制使 >로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충무공< 忠武公 > 이순신< 李舜臣 >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1593년 8월 수군통제사가 된 이후 충무공의 주된 활동무대가 한산도를 중심으로 한 통영 근방이었으므로 가까운 남해 충렬사와 함께 이곳에 그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향< 祭享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창건된 것은 1606년(선조< 宣祖 >39)이었으며 당시 수군통제사로 있던 이운룡< 李雲龍 >이 왕명에 따라 건립하였으니, 그는 곧 임진왜란시 이충무공 휘하에서 왜적을 물리친 역전의 수군장수였다. 그 뒤 1663년(현종 4) 남해 충렬사와 함께 사액을 받은 후 역대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 가을의 제사를 주관해 왔다. 따라서 『문헌비고< 文獻備考 >』에 이곳 충렬사의 창건 및 사액의 연대를 각각 1614년(광해 6)과 1723년(경종 3)으로 기록한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사액< 賜額 >이 내려지는 과정에서도 이곳 충렬사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노량에 있는 남해 충렬사의 창건이 여기보다 늦었으면서도 1663년에 먼저 사액이 된 후 이곳에는 아무런 조치가 내려지지 않자 그 해 10월, 사간< 司諫 > 민유중< 閔維重 >이 경연< 經筵 >에 들어가서 이곳 사우< 祠宇 >에도 사액이 내려져야 함을 건의하였고, 영의정 정태화< 鄭太和 >와 예조판서 홍명하< 洪命夏 > 역시 같은 내용을 주청함으로써 뒤늦게 사액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때 이루어진 '충렬사< 忠烈祠 >'란 액자가 참찬송준길< 參贊 宋浚吉 >의 웅건한 필체로 쓰여지게 되었으니 그는 곧 민유중의 장인이기도 하였다. 이 사당의 규모는 본전< 本殿 >과 정문·중삼문 외에 1663년 이후 김경< 金鏡 >, 최숙< 崔숙 >, 김중기< 金重器 > 등 역대 통제사들에 의해 이루어진 동서재실< 東西齋室 >과 강당 및 숭무당< 崇武堂 > 등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경내에는 특히 어느 사당에서 보다도 많은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은 '통제사충무이공충렬비< 統制使忠武李公忠烈碑 >'인데 사당의 정문 우측에 위치한 이 비는 1681년(숙종 7)에 수군통제사 민섬< 閔暹 >이 세운 것이다. 전면에 있는 글은 1614년에 영의정 이항복이 쓴 것으로 현재 여수에 있는 '통제이공수군대첩비< 統制李公水軍大捷碑 >'의 내용과 같은 것이다. 그 뒷면의 음기< 陰記 >는 우암 송시열이 쓴 것으로 입비< 立碑 >의 내력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명나라 황제가 이충무공께 내린 팔사품< 八賜品 >, 즉 여덟가지의 선사품과 함께 정조대왕이 내린 어제기판< 御製記板 >이 보관되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www.tycr.kr/introduce.php 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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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漢樓-강한은 중국 호북성의 무한에 있는 지명이다.강한은 무한을 가로질러 흐르는 장강(양자강)과 지류인 한수가 합류하는 지점으로
장강에서 강을 한수에서 한을 따 강한이라 부르고 예로부터 열국이 각축하던 삼국지의 무대이며 이름 난 경승지이다.
이 강한의 대안에는 이백의 시에 등장하는 황학루와 항주의 서호와 비견되는 동호가 있다....
1840년 제 172대 통제사 이승권이 이곳에 누각을 지었을때 시인 강위(姜偉)가 경승지 통제영과 이충무고의 위업을 이 강한의 고사에 연관지어
강한루가 이름지었다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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