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계룡산(대전)

[스크랩] 남매탑체서 동학사로...

무량청정1 2009. 2. 23. 16:24

 

 남매탑은 동학사와 가바 중간에 있는 옛 청량사터에 5층과 7층으로 2개의 탑이 있는데 그 전설은...

 

계룡산 남매탑(男妹塔)은 동학사(東鶴寺)에서 북쪽으로 약 2㎞ 지점에 위치하며 오뉘탑, 청량사지쌍탑(淸凉寺址雙塔)이라고도 한다. "청량사(淸凉寺)"는 재명와편(在銘瓦片)의 출토에 의하여 확인된 절로 이 절이 언제 창건되어 언제 폐사 했는지는 정확한 문헌이 없어 알 수 없다.
그러나 남매탑의 건축양식으로 볼 때 청량사는 백제 말에서 통일신라초에 실제 존재한 절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절터에는 계명정사라는 암자가 있으며 주변의 옛 절터는 밭(田)으로 경작되고 있다.


남매탑에는 탑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패망(敗亡)하자 백제의 왕족 이였던 한 사람이 계룡산으로 들어와 현재 남매탑이 있는 청량사지 터에서 스님이 되어 한 칸의 초암을 짓고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스님이 신라 선덕여왕 원년에 당나라에서 입국한 상원스님이다는 설도 있다.)


스님은 나라 잃은 설음을 모두 잊고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여생을 보내고자 하루하루를 불공을 드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계절은 겨울로 접어들어 밖에는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이 좌선을 하며 삼매에 들어 있는데 밖에서 큰 동물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이 몸을 푼 후 밖을 나가보니 송아지 만한 호랑이가 입을 쩍 벌린 채 고통스러워하며 시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이 가까이 가보니 호랑이가 동물을 잡아먹다가 갈비뼈가 목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 이였다.

스님은 호랑이에게 "네가 살생한 까닭으로 이렇게 고통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호랑이 목에 손을 넣어 갈비뼈를 빼주었는데 호랑이는 연신 고마운 몸짓을 하며 숲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호랑이는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간혹 나타나 산돼지도 물어다 놓고 노루도 물어다 놓고 가곤 했다. 스님은 호랑이가 동물들을 물어다 놓자 "내가 그토록 살생을 하지 말라고 했거늘 또 살생을 했단 말이냐?"하며 호랑이를 크게 꾸지졌다.

그리고 나서 몇 일이 지난 어느 날 밤, 스님이 불공을 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이 밖을 나가 주위를 살펴보니 이게 웬일인가.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에 아리따운 묘령의 여인이 쓸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여인의 머리에 가르마가 단정하게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제 갓 시집온 처녀 같았다.

이 깊은 밤 산중에 묘령의 여인이 무슨 연유로 이곳에 와 있단 말인가? 스님은 의아스럽게 생각하면서 여인을 초암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정성을 다해 극진한 간호를 했다. 그러자 여인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스님은 여인이 의식이 돌아오자 여인에게 야밤에 이 곳에 온 연유를 물었다. "낭자는 뉘오신대 이 깊은 밤에 산중에 와 계신 것입니까?"

그러자 여인은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으며 겁에 질린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스님이 여인을 가까스로 안정시키자 그녀는 비로서 입을 열었다. "소저는 경상도 상주 땅에 사는 처자이온데, 혼기가 되어 이웃 마을 양반 댁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날밤에 들기 전에 소피가 마려워 잠깐 밖을 나왔다가 갑자기 송아지 만한 호랑이가 앞에 버티고 있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한 끝에 그만 정신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바로 이 곳이옵니다."

여인은 결혼 첫날밤에 소피를 보려 나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이 곳까지 오게 된 것 이였다. 이 때부터 여인네들은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방에서 일을 보기 위하여 요강이 생겨났다고 한다. 스님은 여인을 초암에서 며칠 머물게 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으나 여인은 말하기를 "고향에서는 이미 죽은 목숨이온데 이 몸으로 어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스님께서 저를 구해 주셨으니 저는 스님을 평생 지아비로 모시겠나이다." 하며 청혼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스님은 "나는 불제자인데 어찌 여인과 혼인 할 수 있겠소." 라고 거절하며 그대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오누이처럼 같이 살아가자고 하여 오누이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비구, 비구니로서 수행을 하다가 말년에 한날 한시에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 이들 두 사람이 세상을 뜨자 사람들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행적을 후대까지 기리고자 석탑 2기를 쌓고 남매탑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남매탑을 배경으로..

 

 

 

 

 

 

 남매탑 아래 상원암..흐리게 나와 아쉽다..디카의 한계...

 상원암과 남매탑

 이제 동학사로 내려 가는 일만 남았다.1.7km ....

 내려가는 길이 여간 가파른게 아니다. 무릎이 안좋은데..괜찮을 런지..

 14:49  내려오고 또 내려가니 동학사가 가까워 온다.1.1km 

 지난 가을 아름답게 채색했을 단풍잎..낙엽이 지지 않았다. 

출처 : 광주광산산악회
글쓴이 : 무량청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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