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3
5.53km 실 산행사간 2시간 46분
사방댐이 있는 곳에서 산행 시작(여기까지 임도 따라 차량으로 이동)
임도 따라 올라 가는 길
총 13명중 3명은 차량운전으로 전망대로 가고 10명이 산행
우측으로 산행로 입구가 있지만 계속 임도 따라 간다.
다시우측으로 산행 입구가 있어 단체사진 촬영 후 올라 간다.
올라 가니 묘지가 나온다. 누군가 길이 없다고 한다. 잘 모르는 산행중 길이 있어 따라 가다 보면 묘지 가는 길이 종종 있어 그런가 보다 하고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
이묘에서 한참 명당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다시 내려가 임도를 따라 전망대 까지 간다.
자헌대부 공조판서(資憲大夫 工曹判書 정2품) 겸(兼)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조선 시대 특별 사법기관이었던 의금부(義禁附)의 정2품 문관직) 오위도총부(五衞都揔府조선시대의 중앙군인 오위를 지휘 감독한 최고 군령기관
도총관(都揔管조선시대 5위도총부에서 군무를 총괄한 최고 군직)
정간공(靖簡公 시호[諡號 ] : 벼슬한 사람이나 관직에 있던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 행적에 따라 임금으로부터 받은 이름)
나와(懒窩 호[號 ] :본 이름이나 자(字) 외에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 )
기선생(奇先生)
휘(諱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왕이나 제후 등이 생전에 쓰던 이름. 원래는 죽은 사람의 생전의 이름을 삼가 부르지 않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인데, 후에는 생전의 이름 그 자체를 휘라 일컫게 되었다.)
언정(彦鼎)지묘(之墓)
정부인(貞婦人조선 시대에, 정이품ㆍ종이품 문무관의 아내에게 주던 봉작. 숙부인의 위, 정경부인의 아래로, 고종 2년(1865)부터는 이품 종친의 아내에게도 주었다.)
제주양씨(濟州梁氏)
부(祔합사 합장)
[네이버 지식백과] 기언정 [奇彦鼎] (두산백과)
1797년 작고 했고 현손이 비석을 세웠으니 1대를 30년으로 계산하면 120년
기언정[ 奇彦鼎 ]
조선후기 대사간, 대사헌,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국진(國鎭)·중화(仲和), 호는 나와(懶窩). 기욱(奇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기진열(奇震說)이고, 아버지는 기정후(奇挺後)이며, 어머니는 나천추(羅天樞)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3년(영조 39) 10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올랐는데 1771년에는 정언이 되었다. 명종 때 유명한 성리학자인 기대승(奇大升)의 후예로서 대대로 전라도 광주에서 살았는데, 이 당시 그 후광을 입어 1782년(정조 6)에는 당상관으로 특별히 초자(超資)되어 승정원동부승지가 되었으며, 계속 순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성격이 청렴하고 강직해서 1786년 대사간에 발탁된 뒤, 세 번이나 연달아 이를 역임하다가 1792년에는 대사헌에 취임하여 관원들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에 진력하였다. 1795년에는 다시 공조판서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성리학에 심취하여 관계 서적을 조석으로 암송하였으며, 이런 자세는 조상인 기대승을 방불하게 하였다. 시호는 정간(靖簡)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언정 [奇彦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점심을 먹고 산행을 위해 다시 왔던 임도를 따라 올라 간다.
큰봉 오르는 입구에 왔다 큰봉으로 오른다.
올라 가다 보니 아까 왔던 기언상 묘지로 온다. 길이 없다고 했는데 묘지 위로 길이 있어 계속 올라 간다.
한참 올라 가니 큰봉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우측에 더 높은 봉우리가 있는데 그냥 큰봉쪽으로 가다.
큰봉 가는 능선길
큰봉..310m
무명봉..여기까지 오르락 내리락
이곳에서 좌측으로 하산한다.
제법 가파르게 내려간다.
드뎌 전망대가 있는 임도를 만나 산행을 종료한다.
참 따뜻한 날씨에 산악회 운영진과 원로들이함께한 번개 산행..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