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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후성 강판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농장다리 위로 올라가 본다.
법원쪽 길
다리위에서 본 푸른길
다시 푸른길로 내려 가는데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석류도 주렁주렁
붉게 익어가고 있다. 가을엔 껍질이 터지며 붉은 석류알이..침이 절로 나오게 할 것이다.
빈 마루의 향수 라는 의자 작품..이해 불가...그냥 쉼 의자 같다.
시가 흐르는 대청...대청 넘어 나무가우거지고 자그마한 연못이 있다면 더 운치가 있겠다는....
오른쪽은 창억떡집...왼쪽은 큰길 건너 지호로를 따라 지산 유원지로 연결되는 길이다.
분수가 나왔으면 훨씬 더 운치가 있을걸..
여기도 분수는 안나오고 개울은 말라 있다.분수를 가동하면 개울에 물도 흐르고 아름다운 길이 될텐뎅...
여기도 물이 졸졸흐르면 얼마나 운치가 있을까? 많ㅇ는 양이 아니고 그냥 졸졸 흐르기만 한면....
셀레시오여고 버스정류장..여기 못미쳐 서석교회 뒤부터 1순환도로와 만난다. 차량의 소음과 매연...옛날 철길이 여기에 있었으니 철길따라 길을 내다 보니 그렇겠지만...푸른길에 어울리지 않은 길이다.
제1순환도로==>남광주 교차로 (남광주역) - 조선대학교 입구 - 지산사거리 - 산수오거리 - 두암지구 입구삼거리 - 광주교육대학교 - 서방사거리 - 안보회관 앞 - 중흥삼거리 (광주역 북문) - 전남대학교사거리 - 신안교 - 경신여자고등학교사거리 - 동운고가차도 - 광천사거리 (유스퀘어) - 화정 삼익아파트앞사거리 - 농성광장 (농성역) - 건강관리협회사거리 - 전남매일 앞 - 주월 교차로 - 백운 교차로 - 남광주고가차도 - 남광주 교차로 (남광주역)
심산유곡 호방
상념...위에 달린 풍경소리가 참 맑게 울린다.
패랭이꽃
남광주가 1km남았다.
나팔꽃아가씨 나팔불어요.==> 동요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a6cCf22zkEo
조대얖
조대앞 길건너 조형물...살명이 없다. 뭘 의하는지...
언약의 벤치...특별한 사람과 함께하면 행복해 지는 곳이라네요.
조대에서 남광주로 가는 길..차량소리와 매미 우는 소리가 여간 아니다. 짜증날 정도로....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지저귀는 새가 있어 담아 본다.
멋있다.그냥...조형물에 설명이 없으니...
전대병원 뒷쪽 쉼터
남광주 사거리...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길건너에 을지연습 홍보프랭카드가 설치되어 있다.한한반도의 전쟁을 억제하는 훈련인가? 부추기는 훈련인가? 요즘 두 또라이들의 설전에 정세가 하도 어수선해 저 훈련의 의미가 알고 싶어 진다.
남광주역 주차장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돌하르방..제주도도 아닌데 무슨 의미가...
돌하르방 : 자세히 보면 그 두 손의 위치가 다릅니다. 만약 오른손이 왼손보다 더 위에 놓여 있다면 그 하르방<할아버지>는 글을 잘 썼다 하여 문과 하르방이라 하고 그와 반대로 왼손이 오른손보다 더 위에 놓여 있다면 그 하르방은 활을 잘 사용했다하여 무과 하르방이라 한다고 합니다.
남광주역사지로 가는 길
능소화가 만발...금등화(金藤花)라고도 하는데 양반집에만 심었다 하여 양반화라고도...어사화라고도 하는데 그건 좀...
여기도 바닥분수가 있는데 물이..
남광주 시장으로 내려 가는 길
1930년 12월 25일 : 신광주역(新光州驛)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1938년 4월 1일 : 남광주역으로 개칭
1978년 11월 20일 : 화물취급 중지
2000년 8월 10일 : 경전선 광주 외곽 이설로 역의 기능은 서광주역으로 이전, 폐역.
역명은 역이 위치한 지명을 따라서 지었음. 광주의 철도 이용객을 분산시켜 광주시내 주요역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2000년 8월 10일 경전선 광주 시외 이설로 인하여 이 역은 폐지되고, 역의 기능은 서광주역으로 넘어갔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광주역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간이역과 사람들), 2008., 한국콘텐츠진흥원)
옛날 광주 남부 지역에서 농수산물을 기차를 타고 와 남광주역에 새벽시장이 열렸는데 기차가 없어진 지금도 새벽시장은 열린다.
기차도서관..내부로 들어가 보려다 그냥 사진만 찍는다.
기차카페
남광주역에서 양림동으로 건너가는 남광보도교.. 아래 옛날 철교 일부가 남아 있다.
어찌보면 흉물스럽지만 옛 정취가 되살아 난다.
남광보도교..그아래 철교..그 위에 남광주 고가도로
해당화
해당화 열매
남광보도교를 건넌다.
다리위에서 본 광주천
백운광장쪽으로 가는 양림동 푸른길...찻길과 같이 가는 길이라 차량 소음이 심하다.
카다란 멧돌이 6개나..진짜 맷돌이 아니라 만든것일까?
양림역사 마을..언제 한번 둘러 봐야 겠다.
정율성
[鄭律成 ] 재중(在中) 작곡가. 전남 광주(光州) 출생. 일명 정률성.
1933년 형을 따라 중국 남경(南京) 조선혁명간부학교에 입학하여 1934년 졸업 후 비밀활동을 하면서 피아노를 배웠다. 상해에 가서 외국인에게 성악을 배운 후 1937년 프랑스에서 작곡공부를 했다.
프랑스에서 귀국해 신성해가 작곡한 "구국군가"(舊國軍歌)를 불러 호평을 받았다. 이 시기 가요 "5월의 노래"·"싸우는 여성의 노래"·"유격전을 발동한다" 등을 작곡했으며, 대공전지복무단(大公戰地服務團) 선전대대 음악대장직을 맡고 활동했다. 서안(西安)팔로군 판사처의 소개로 연안에 도착해 섬북공학에서 공부하면서 가창활동에 참가했다.
1938년 봄 1연안로신문예학원에 전학해 "연안송"·"연수요"를 작곡했다. 1939년 연안항일군정대학 정치부 선전과 음악지도원으로 활동하던 때 "팔로군 대합창"을 작곡했고, 그해 12월 로신문예학원 음악부로 전근하였다.
1942년 8월부터 화북조선혁명군정학교 교육장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조국 향해 나가자"를 작곡했다. 같은 해 북한으로 가서 1946년 황해도 선전부장을 지냈으며, 해주음악전문학교(海州音樂專門學校)를 세웠다.
1947년 평양으로 전근해 보안대대 훈련대대부 구락부장(문화부장) 직무를 맡았다. 보안간부훈련대대부협주단(조선인민군협주단의 전신)을 창건하여 초대 단장을 역임했으며, 1949년 조선국립음악대학(朝鮮國立音樂大學) 작곡학부장에 부임했다.
1950년 중국으로 돌아가 1952년부터 북경인민예술극원으로, 이후 중앙악단에서 전문 작곡가로 활동했다.
가요 "해방행진곡"·"3·1행진곡"·"조선인민군행진곡"·"조중친선의 노래," 대합창 "두만강"·"동해어부" 등을 작곡했고, 가극 "망부운"(望夫云)·"설란," 대합창 "평화의 합창"·"강우의 노래소리"·"조국만세"·"행복한 농장," 동요 "우리는 행복해요"·"푸르른 조국," 대중가요 "흥안령에 눈꽃 날린다"·"철도로동자의 노래"·"집련화"·"건설의 행진"·"공군전가"·"국방전사의 노래" 등 각종 작품 360여 편을 창작했다.
"팔로군대합창" 가운데 "팔로군행진곡"은 1939년 창작되면서부터 50여 년 동안 중국 전역에서 불리워지고 있다. 이 곡은 중앙군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되었다. 1978년 북경음악출판사에서 『정률성가곡선』이 출판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율성 [鄭律成] (한겨레음악대사전, 2012. 11. 2., 도서출판 보고사)
ㅂ[롱나무..일명 백일홍..옛날에이 꽃이 3번 피면 쌀밥 먹는다고 했는데 ...참 없이 살던 힘든시절이었다.
비들기들이 뭔가 열심히 쪼고 있는데 뭘까? 누군가 먹이를 뿌려 준걸까?
아름들이 벗꽃나무가 있다.
기다란 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