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수정
- 소재지 : 전남 장성군 삼계면 천방길 5
- 지정번호 : 문화재 자료 100호 (1984. 2. 29)
- 규 모 : 정면 3칸, 측면 1칸, 팔작지붕
- 분 류 : 보물
상세정보
관수정(觀水亭)이라 함은 맑은 물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는다는 뜻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에 전퇴인 골기와의 팔작지붕 건물로 겹처마를 돌렸다. 천방사와 용암천을 낀 아름다운 경치를 가지고 있다
지지당(知止堂), 혹 관수정이라는 호를 갖는 송흠이 중종 34년(1539)에 건립한 것이다. 송흠은 세조 5년(1459)에 나서 명종 2년(1547) 89세로 사망하였는데, 연산군 때 퇴직하여 후진교육에 전심했고 중종반정 후에는 복직하여 내외의 여러 요직을 거쳤다. 특히 담양부사, 전주부사, 광주·나주목사, 전라도관찰사 등 이 지방에서 외직을 맡았는데 이는 101세를 산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서였다. 효행으로 상을 받았고, 중종 33년(1538)에는 청백리에 녹선되기도 했다. 또한 효헌이란 시호를 받았다.
정자의 내부에는 당시대 친우인 홍언필, 전안국, 성세창, 신광헌, 김인후, 임억령 등의 제영(題詠)이 다수 있다.
근래에 새롭게 다듬어 쌓은 두벌대의 돌 기단 위에 복발형(覆鉢形)의 주춧돌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기둥 머리에는 경사지게 깍은 보아지를 끼워놓고 주두를 놓은 다음 퇴량을 걸쳐 얹었다. 이 퇴보 위에는 장혀받침 굴도리를 놓아 서까래를 받쳤다.
가구 구조는 1고주 5량가로 양쪽에는 낮은 평주를 세우고 내진의 고주 끝과 대들보 위에 놓은 동자주 위에 종량을 두어 원형판대공으로 종도리를 지붕을 지지하도록 하였다.
오른쪽 2칸은 마루를 깔고 왼쪽 1칸은 방을 두었는데 3면을 4분합 들어 열개문으로하여 개방적인 면이 보인다. 좌우 측면에는 낮은 평난간을 돌리고 배면은 벽으로 처리하였다. 충량과 선자서까래, 기둥 사이의 소로 받침 등에서 가구미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