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6 누락된 산행 사진
서운산
높이는 547m이다. 경기도의 최남단인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을 경계로 차령산맥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성시에서 남쪽으로 약 12km 떨어져 있다. 아담하고 바위가 거의 없는 유순한 산세를 가졌다. 4월초가 되면 계곡과 능선에 진달래가 피고 5월이면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청룡사, 석남사 등의 산사와 청룡사 대웅전(보물 제824호), 청룡사 삼층석탑, 명부전, 관음전 및 조선 현종 때 주조한 무게 약 5톤의 동종 등의 문화재가 있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년)에 명본국사가 대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로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중건하면서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여 산 이름은 서운산, 절 이름은 청룡사로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 때에 홍계남이 수축하여 방어전을 전개하였던 산성이 있는데, 반면식 토축산성으로서 서쪽 능선에서 남방향으로 해발 535m에서 460m 지점까지 펼쳐져 있다.
다. 지식백과
산행코스가 짧아 서운해서 서운산이 아닌 瑞雲山 ..참 상서로운 산 ..해발은 547m..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아직 서설이 남아 있는 참 부드러운 육산..평탄하며 가파르지 않는 등로..정상에서 하산길은 좀 파르지만 총 2시간 40분 정도소요 되었지만 실제 산행 시간은 2시간도 채 못되는 짧은 산행을 마치고 한 식당에서 한우.버섯 전골로 점심을 먹고 덕산 온천으로...
덕산온천
예산에서 서쪽으로 15km, 홍성읍에서 북쪽으로 9km 지점에 있으며, 온양·도고로 이어지는 충청남도 온천지대의 서쪽 끝에 해당된다. 수온 47.7℃의 약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천으로 온천지대의 총면적은 309만 1000㎡이다. 부존량은 84만 3000㎥, 가채수량은 하루 9,370㎥, 적정 양수량은 하루 4,700㎥이고 게르마늄이 0.017㎎/ℓ함유되어 있다. 효능은 만성 류머티즘을 비롯하여 피부미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찍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덕산현조(德山顯條)에 온천재현 남오리(溫泉在縣南五里)라고 적혀 있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충청도(忠淸道) 덕산현조(德山顯條)에도 온천재현 남삼리(溫泉在縣南三里) 윤일문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이율곡은 이곳 온천수를 효능이 탁월한 약수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저서인 《충보》에서 온천의 유래에 얽힌 전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순조 때의 기록에도 이곳에 많은 탕치객(湯治客)이 모여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온천장으로서의 상업시설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은 1918년 일본인이 처음으로 덕산온천이라는 건물을 짓고 온천을 개장한 때부터이다. 그후 같은 자리에 이한경이 새로 건물을 짓고 온천을 굴착하니 지하 300m 깊이에서 섭씨 43∼52℃의 온천수가 용출되었는데, 지구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분출되는 온천수가 어머니의 젖과 같은 효과를 지녔다고 해서 그 터를 지구유(地球乳:충남문화재자료 190)라고 부른다.
이 일대는 예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온천이용업소 9개소 외에 호텔 등 많은 숙박시설이 있어 연중 250만 명이 찾고 있다. 가까운 곳에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생가와 기념관, 수덕사(修德寺) 등 덕산도립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지식백과
덕산온천에 숙소를 정해놓고 온천욕을 하고 나와 나는 이종사촌 동생의 장례땜에 아쉬운 귀광길에 올랐다.
나는 참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작품 사진이 아닌 내가 카메라를 들고 다닌 곳의 풍경과 정취를 담는다. 내가 찍은 사진 속에는 나는 안보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나도 같이 있다.
신나게 달리는 찻속에서..
달리는 찻속에서 차창밖으로 보이는 시골 풍경들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한옥마을
날씨는 포근하지만 쌓인 눈으로 보아 겨울은 겨울이다.
한옥펜션에서 본 겨울 해
우리가 묵은 한옥 팬션..한채 전체 내부는 넓은 거싱과 주방,화장실, 그리고 두개의 방..그중 하나는 장작불을 지피는 온돌방.
1박후 아침 풍경
오늘의 일정중 서운산 등산...석남사초입
석남사 주차장에 주차
09:41 산행 초입지 산행 안내도.
서운산 자생화 꽃길
지금은 겨울이라 단풍은 볼 수 없지만...
산행중 내려다 본 석남사
눈 쌓인 등로길...
등로길에 있는 약수
10:44 정상 약 1시간 남짓 정상 도착
하산길
배티고개와 갈림길
엄청 가파르다.
서운산 석남사 매애여래입불
11:56 석남사
영산전과 3층석탑
부모은종탑
석남사를 나와 배티고개를 넘어 예산 덕산 온천으로....
베티고개 성지...맘은 들러 보고 싶었지만 그만 통과...
점심 먹은식당..우리가 먹은게 한우버섯샤브?
아우네장터
아우내란 ‘2개의 내를 아우른다’는 뜻이다. 경상도와 한양을 이어주는 길목이다. 조선시대부터 전국의 상인들이 청주·진천·조치원·예산 등에서 지역 특산물과 소를 몰고 와 장을 형성하였으며, 인근 장터 가운데 가장 크게 번성하였다. 장은 매월 1일·6일·11일·16일·21일·26일에 열리는데, 돼지 소창에 양배추·파·고추·마늘 등을 선지와 함께 다져 넣은 ‘병천순대’로 유명하여 평상시에도 찾는 사람들이 많다. 1919년 4월 1일 유관순 열사가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만세를 불렀던 곳으로 주변에는 유관순 열사 생가·조병옥 박사 생가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우내장터 [ㅡ場ㅡ] (두산백과)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경성[서울]과 평양 등 전국 여섯 개 도시에서 동시에 독립 만세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성에서 3·1 운동을 목격한 천안 출신의 유관순(柳寬順)은 3·1 운동 직후 총독부가 휴교령을 내리자 2월 13일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인 유중권(柳重權), 숙부인 유중무(柳重武) 등에게 경성의 상황을 전하고 4월 1일 아우내장의 장날에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경과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에는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한동규(韓東奎)·이순구(李旬求)·이백하(李伯夏)·김상철(金相喆) 등의 20대 청년들을 비롯한 조인원(趙仁元)·조병호(趙炳鎬)·유관순·유중권·유중무·조만형(趙萬衡)·김상훈(金相訓)·김용이(金用伊)·박제석(朴濟奭)·박봉래(朴鳳來) 등 다양한 마을에서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뜻을 모아 운동을 준비하였다.
드디어 1919년 4월 1일, 갈전면[지금의 병천면] 아우내 장터에는 약 3,000여 명의 장꾼들이 모여 3단계로 만세 운동을 진행하였다. 1단계는 4월 1일 오후 1시 무렵 시작되었다. 약 3,000여 명의 군중이 ‘대한 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에 태극기를 달고 이를 앞장세워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누비는 큰 시위를 벌였다. 이 소식을 접한 일본 헌병들은 주재소를 향하여 오는 군중을 향하여 총을 쏘아 많은 사상자를 냈다. 또한 헌병과 수비대가 급히 출동하여 총을 쏘고 총검으로 마구 찌르는 만행을 벌여 수십 명의 사상자가 생겨났다. 두 번째 단계는 오후 4시 경에 일어났다. 사망자의 시체를 주재소로 옮기면서 항의하는 군중을 향하여 일본 헌병은 총을 쏘는 것으로 응대하였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군중이 부근의 산과 시장에 모였다가 면사무소와 우편소를 습격하고 전화선을 절단하는 등 시위를 벌였다.
결과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은 일제의 강제 진압으로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이 19명이며, 유관순을 포함한 많은 참가자가 부상이나 투옥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 날 체포된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도 법정 투쟁을 벌이며 재판 결과에 항고하였다. 그리고 조인원(趙仁元)·유관순·유중무 각 3년 형, 김용이·조병호 각 2년 6개월 형, 김상훈·백정운(白正云) 각 1년 6개월 형, 조만형·박제석 각 8개월 형, 박봉래 기각, 신씨(申氏) 무죄, 김교선·한동규·이백하·이순구 각 2년 형, 김상철 6개월 형 등의 판결을 언도받았고, 유관순은 부당한 재판 결과를 거부하면서 저항한 끝에 법정 모독죄가 추가되어 7년 형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은 오늘날까지도 천안 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이에 전 국민이 성금을 모아 1987년 천안시 목천읍에 세운 독립 기념관을 비롯하여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 아우내 3·1 운동 독립 사적지 등을 조성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자주 독립을 위하여 목숨 바쳐 싸웠던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아우내 場터 萬歲 運動]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아우네 장터 지나 개울에 물오리때들...찻속에서 촬영
덕산온천으로 가는 길에서 보는 시골 풍경들...
여기까지가 디카로 찍은 사진이며 아래는 핸펀으로 찍은 사진
한옥팬션 장독대
우리가 묵은 한옥 팬션
한옥팬션 주위풍경
서운산 정상
2박3일을 함께 함께 하지 못해 참 아쉽다.그래도 1박2일 잼있고 즐겁고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