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사[ 金谷寺 ]
한국불교태고종에 소속된 사찰로, 신라 선덕여왕 때(632∼647) 밀봉(密奉)이 창건하였다. 밀봉은 당시 밀종(密宗)의 큰스님으로 이 사찰을 창건하고 성문사(城門寺)라 했다고 전하나 당시는 삼국이 통일되기 전이므로 신라 승려가 백제 땅에 사찰을 세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사찰 입구 양쪽에 깎아지른 석벽이 있어 사찰 이름을 성문사라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선 성종 때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는 금곡사로 나오나 사찰 이름이 바뀐 연대는 알 수 없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 장소로 쓰였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탔으며, 1799년(종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 폐사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된 듯하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중창되었고 1969년에는 김성활이 불당과 요사를 재건하였다. 1984년 혜선이 관리를 시작하면서 태고종 사찰이 되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칠성각·범종각·천불전·명부전·일주문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본래 무량수전이었으나 최근에 전각 이름을 바꾸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약사불 등 삼세불을 모셨다.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있으며 지장도·칠성도·제석천룡도·독성도 등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유물로는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29호로 지정된 금곡사삼층석탑이 유명하다. 백제 석탑의 양식을 따른 석탑으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는 오층이었으나 현재는 삼층만 남아 있으며, 전체 높이는 5.4m이다. 1988년 6월에 해체하여 복원할 때 사리 32과가 발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곡사 [金谷寺] (두산백과)
절 입구에 있는 국태민원일붕기원비
방랑시인 김삿갓님이 금곡사 체류하면서 지은 시...
강진 군동면 파산리 보은산 우두봉 자락 금곡사 어귀 김삿갓 시비.
사진 촬영 그레이트맨 님. 2011. 7. 16. 사진 출처: http://cafe.naver.com/mhdn/27924
김삿갓이 지은 시라고 해서 새겨놓은 거네요.
첫 번째 자, 무슨 자예요? 쌍(雙) 자. 밑에는? 쌍암(雙岩). 그 밑에는?
병, 나란히 병(竝) 자. 병립(竝立)하다 할 때의 설 립(立) 자 두 개 쓴 거.
요거는 일어날 기(起) 자. 의심할 의(疑) 자. 어지러울 분(紛) 자, 이거 나눌 분(分) 자 쓴 거죠.
다툴 쟁(爭) 자죠? 뭐냐 하면,
雙岩竝起疑紛爭 쌍암병기의분쟁
쌍암, 이 두 바위가 나란히 딱 서가지고 마치 분쟁하는 것 같다라는 겁니다.
싸우며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분쟁을 하는 것 같은데...
一水中流解忿心 일수중류해분심
물 하나가, 가운데 요 물 하나가 중간에 흘러가면서 분한 마음을 풀어준다.
[손사래를 치며] 야, 싸우지마, 싸우지마, 싸우지마!
김삿갓답죠? 저도 이 시는 처음 봅니다.
쌍암병기의분쟁(雙岩竝起疑紛爭)이오
일수중류해분심(一水中流解忿心)이라
분한 마음을 물이 화해시켜주면서 싹...
[주위를 둘러보며] 어유, 참, 경치가 좋네.
아, 여기 [안내판 풀이가] 있어요?
[일동 웃음]
이거, 이거, 이거 해석이 틀렸다!
[일동 웃음]
* 안내판 풀이
두 바위가 나란히 솟아 다투는가 여겼는데
한 줄기 물 가운데로 흘러 성낸 마음 풀어주네.
雙岩竝起疑紛爭
一水中流解忿心
[출처] 정민 교수 금곡사 김삿갓 시 한 수 풀이 지상중계 (::문학동네::) |작성자 흰곰
시비 뒷면 남은 돈이 칠닢
바랑시인 김삿갓 시비 건립
금곡사 삼층석탑
이 석탑은 기단중심석의 전 후 측면에서 각기 1매씩의 판석이 유실된 상태였고 갑석에서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원형의 모습을 잃은채 보존되어 왔었다. 그러던중 1988년 6월 10일 부터 6월 23일 까지 약 2주간 해체 복원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이때 3층탑신에서 세존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이 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 석탑은 3층석탑으로서는 5m가 넘는 거탑이며, 그 형식면에서는 전형적인 고려양식을 고수하면서도 기단부 구성이나 옥개석의 우동마루 등 일부에서 약간 백제계 석탑의 분위기가 가미되고 있다.
조성연대는 고려초반기로 추정된다. 1층 옥개석은 4개의 석재로 결구하였고 비교적 두꺼운 편으로 처마 곡선이 밋밋하여 전각의 반전 또한 완만하다. 층급 받침은 통례(通例)와는 달리 6단이며 옥개석 상면은 1단 탑신에서와 같다. 2, 3층 옥개석은 모두 두 개의 석재로 결구되었고 하면의 받침은 2층이 5단, 3층은 4단으로 줄었다. 3층 탑신 역시 각면 모서리에 모서리 기둥없이 편평하게 처리하였다. 상륜은 모두 유실되고 없다.
이 탑은 전반적으로 보아 단층 기단이면서 기단부나 탑신부 각 면에 모서리 기둥없이 편평하게 처리된 점이라든가 또는 층급 받침이 일률적이 아닌 6, 5, 4단으로 된 점 등은 정형을 따르지 않고 있으나 탑의 각 부재에 있어서의 규율성, 전체적인 체감율 등은 매우 알맞아 안정감이 있다. 또 1층 탑신이 두 개로 포개진 예는 광주 서5층 석탑(보물 제109호)이나 장성 내계리 5층 석탑(지방 유형 131호) 등에서 볼 수 있어 이 탑의 조성연대는 고려 시대로 추정된다.
* 규모 - 총고 5.6m
* 시대 - 고려시대
[네이버 지식백과] 강진 금곡사 삼층석탑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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